유령선- 그날, 바다에 왜 유령선 항적을 주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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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령선 (Ghost Ship)

제작국 한국
감독 김지영

장르 추적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49분

제작연도 2019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제작·제공 ㈜왝더독

공동제공·배급 ㈜엣나인필름

㈜왝더독

㈜왝더독

상영시간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다. 49분. 장편영화라고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주어진 단서는 둘이다. 영화제목에 찍힌 스핀오프. 그리고 유령선. 스핀오프? 또 다른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시사는 <그날, 바다>의 시사가 있던 강남의 그 극장에서 있었다. 표를 받은 직후, 상영관 밖에서 김지영 감독을 만났다. “특별메시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김관묵 교수도 전문가 아니지 않나. 그분이 관련 전공도 아니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기자의 기사를 보고 언론중재위에 갈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접었다고 한다. 기사를 쓰려면 자신의 반론도 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언론중재위를 꺼낸 영화 감독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날, 바다> 리뷰를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 리뷰에 반론을 담아야 한다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화 리뷰와 관련한 것이 아니다. 리뷰 1주일 뒤에 쓴 ‘세월호 선조위는 왜 <그날, 바다>의 주장에 침묵할까’라는 기사에 대해서다. 1기와 2기 세월호 선체조사위(선조위)와 그 뒤를 이은 사회적참사 조사특별위원회에서 논의 구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세월호 침몰의 내인설과 이른바 외력충돌설을 포함한 ‘열린안’을 놓고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날, 바다>가 제기했던 ‘앵커침몰설’은 얼핏 봐서 열린안에 수렴되는 의견인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해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았다.

영화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그 영화는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치밀하게 논증해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과학적 근거가 제시된 것도 아니고 치밀하게 논증된 것도 아니다. 빈 구석이 너무 많다. 당시 영화 제작자인 김어준씨와 감독에게 영화 상영 후 기자회견장에서 물었다. AIS 항적 기록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던 이른바 ‘특별메시지’가 누군가 세월호 침몰을 일으키려는 이의 ‘의도(영화의 부제는 누군가의 의도를 뜻한 ‘인텐션’이었다)’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려면 맹골수도 근처를 항해하는 다른 배들의 AIS 항적기록에 그 특별메시지가 나타나는지, 아니면 최소한 세월호와 쌍둥이 배이자 같은 항로를 운항하는 청해진 해운의 오하나마나호의 AIS 항적기록을 확보해 그 차이를 논증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온 답은 신통치 않았다. 오하나마나호의 항적기록 확보는 실패했다, 정도였다.

그리고 <유령선>. 시작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된 어느 중국 해커의 이야기가 짧게 들어가 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AIS 기록을 조작하는 일을 비밀리에 수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월호의 진실을 추적하는 감독의 이야기. AIS 항적기록을 당시 김현 의원실을 통해 건네받았는데, 선조위에 자신들의 앵커침몰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제출하려고 정리하다가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이상한 항적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GPS 위치를 추적해보니 그 위치는 중국 선전의 한 오피스텔 건물. 이 배의 항적기록은 왜 2014년 4월 16일 당일 맹골수도 인근을 운항하고 있는 배들 사이에 섞여 들어왔을까. 그 ‘유령선’의 실체를 쫓는 과정을 영화는 담고 있다.

스핀오프 영화 인트로, 사실의 재현일까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쫓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 배의 항적사가 있는 스웨덴을 비롯한 국제조사는 직접 인터뷰도 아니라 e메일로 문의할 뿐이다. 중국 선전시를 방문한 영화의 제작자와 감독은 GPS가 있는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입구의 주차관리인 부스에 가서 “안에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많이 입주해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언리얼엔진’을 써서 만들었다는 앞의 중국인 해커가 등장하는 장면은 실제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추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상해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를 다 보니, ‘어떤 사정이 있어 누군가의 증언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했다기보다 ‘아마도 이럴 것이다’라고 상상에 의한 창작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리뷰를 쓰다 보니 영화의 홍보 문구에 등장하는 ‘천 개의 거짓말’이라는 말이 눈에 밟힌다. 왜, 하필이면 거짓말이 1000개에 달한다고 하는 걸까.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 당일 세월호 항적기록의 거짓을 조사하기 위해서 인근에서 항해하고 있는 1000여 척 배의 AIS 자료를 입수해서 ‘전수조사’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세월호뿐 아니라 그날 인근 배 항적기록 모두가 조작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 스핀오프 영화의 결론이다. 과연 그럴까. 천동설을 지키고자 화성은 지구 주변을 회전하다가 역행하는 구불구불 궤적을 그린다고 강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제기된 비판에 침묵하는 <그날, 바다>의 제작진

㈜왝더독

㈜왝더독

엄밀히 말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배도 인양되었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과적 등 무리한 운행, 잘못된 선체개조,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등의 ‘내인복합설’이 다수설이지만, 그날 과적은 없었고 침몰 당시 배의 회전각 등이 최대치를 넘어선다는 등의 이유로 ‘확정할 수 없는 외력’이 작용해 침몰에 이르게 되었다는 외력설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그나마 침몰한 배를 인양하면 누워 있어 가려져 있던 세월호의 측면이 드러나게 됨으로써 외력의 흔적은 검증 가능할 것으로 봤으나, 배 측면에서 일부 발견된 변형의 원인이 무엇인지 결론이 나지 않음으로 이 역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미궁에 빠졌다. 유튜브로 공개된 8시간 40분짜리 다큐영화 <세월X>가 이 외력설 주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세월X>의 내용을 보면 외력설 자체의 입증,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외력은 누가 가했나?’에 맞춰져 있지 않다. 기존의 내인설 및 누군가가 고의로 침몰을 시켰다는 <그날, 바다>의 음모론적 접근에 대한 비판 및 반박이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판 중 일부는 슬프게도 사실로 보인다. 남겨진 자료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유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찍은 진도 앞바다 사진이 뭔가 특별한 단서를 남긴 것으로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수학여행에 들뜬 아이들이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슬픈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남긴 여정의 일상적 기록일 뿐이다. ‘의도’에 대한 집착이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전시안적 존재의 무시무시한 계획에 대한 상상으로 비약하게 된다. <유령선>은 그동안

<그날, 바다>에 제기된 비판에 대한 답일까. 아니다. 비판에는 침묵하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할 뿐이다. 안타깝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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