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스타들 임금 삭감 ‘상생의 미덕’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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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흔들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축구계도 사상 유례가 없는 ‘보릿고개’를 넘는 중이다. 평온한 일상은 무너졌고, 축구경기도 중단됐다. 수입과 지출이 정교하게 설계된 유럽의 축구 산업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축구 클럽의 비정규직과 저연봉 직원의 해고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자신의 연봉 중 일부를 포기하면서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극복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메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임금 삭감에 솔선수범하면서 화제가 됐다. / EPA/연합뉴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메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임금 삭감에 솔선수범하면서 화제가 됐다. / EPA/연합뉴스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33·바르셀로나)는 유럽 축구에서 선수들의 임금 삭감을 대세로 굳힌 인물이다.

위기에 빠진 유럽 축구… 임금삭감이 답?

메시는 3월 31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급여를 70% 삭감하는 데 동의했다”며 “이 결정으로 나머지 직원들이 급여를 온전히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럽 최고의 연봉(8000만 달러·약 983억원)을 자랑하는 메시는 이번 삭감으로 한 달에 57억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메시뿐만 아니라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헤라르드 피케 등 바르셀로나의 나머지 선수들도 임금 삭감에 동참했다. 바르셀로나는 선수단 임금 삭감으로 한 달에 3200만 유로(약 429억원)를 아낄 수 있게 됐다.

메시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임금을 줄이겠다고 나선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얼어붙은 축구 산업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나마 경기가 열려야 티켓 판매와 TV 중계 그리고 기념품 판매 등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중단돼 모든 돈줄이 끊겼다. 수입은 사라진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선수들의 임금을 계속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2019~2020시즌의 남은 경기가 재개되지 않는다면 TV 중계권으로만 1~2부를 합쳐 6억7900만 유로(약 9546억원)의 손실이 예상되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7억6000만 파운드(약 1조1400억원)를 날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탈리아 세리에A는 8억 유로(약 1조694억원)의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축구 산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스포츠연구소(CIES)가 지난 3월 31일 발표한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6월까지 유럽 축구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앙 등 5대 리그의 선수 가치 총액의 28%에 해당하는 12조6000억원이 증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수들에게 고통 분담 차원에서 연봉의 50%를 줄이자는 제안을 내놓은 배경이기도 하다.

다행히 선수들도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A를 대표하는 명문 유벤투스 선수들이 3월부터 6월까지 총 9000만 유로(약 1209억원)의 임금 삭감에 동의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선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묀헨글라트바흐 선수들이 20%씩 급여를 줄이면서 비정규직 직원들의 고용 안정에 힘을 보탰다. 특히 우니온 베를린 선수들은 “특별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무기한 임금 전액 포기라는 결정을 내렸다.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가대표 골잡이 손흥민(28)도 임금 삭감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는 4월 1일 코로나19 여파로 임직원 550명의 두 달치 급여를 20% 삭감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에선 선수단 임금이 빠졌지만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와의 협의를 거쳐 곧 삭감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대니얼 레비 토트넘 회장은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등 세계 최대 규모의 클럽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며 “프리미어리그 선수들도 축구계를 위해 힘을 보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럽파인 황희찬(24)의 소속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급여를 일부 반납해 독일 분데스리가처럼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돕기로 했다.

국내는 아직 무풍지대… 위기감은 고조

임금 삭감이 대세인 유럽과 달리 국내 K리그는 아직 무풍지대에 가깝다.

K리그는 3월 30일 대표자회의에서 개막 연기에 따라 일정 축소를 합의했지만 선수들의 임금 삭감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 표준계약서에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사태에 따른 선수 임금 삭감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선수의 임금 삭감과 관련된 규정(제26조 3항)은 징계로 45일 이상 선수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사실상 유일하다”며 “과거 메르스 사태에도 개막이 지연된 적은 없기에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선수들이 경기만 치르지 않고 있을 뿐 외부와 격리된 채 구단의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금 삭감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K리그도 구단별로 한 해 예산의 60~80%가 선수 임금이라 일부 구단에선 삭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K리그 1~2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은 1130억원 안팎으로 수당을 뺀 보장 금액이 970억원에 달한다. 기업구단은 코로나19로 모기업이 임금을 반납할 경우 선수들의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시·도민구단은 세비 항목의 변화가 나온다면 임금 체불의 우려도 있다. 수도권 한 구단의 관계자는 “유럽 축구 사례를 보면서 모기업에서 임금 삭감에 대한 문의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아직까지는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코로나19 비상시국이 멈추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프로축구연맹과 구단, 선수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금 삭감을 요구받는 선수들은 정작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창구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선수권협회가 최근 선수를 대변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사회 등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파트너로 대우받지는 못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임금 삭감 논의 과정에서 PFA와의 협의를 우선하는 것과 비교된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임금 삭감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선수들과도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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