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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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치고 나아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내 인생의 노래]김민기 <상록수>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수학교사가 되어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교사로서 철이 든 것은 교직 20년차였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수학을 가르쳐야 하는지 등 수학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나에게 20년 동안 배운 제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방황을 시작했다.

가르칠 용기가 없어 무급 휴직을 감행했고, 그 기간은 3년이나 지속됐다. 다행히 정체성을 찾아 다시 현장에 복귀한 후로는 나 자신과는 물론 학교 사회의 그 어떤 것과도 일체의 타협을 하지 않았다. 진짜 수학을 가르쳐야 했기에 20년 동안 가르친 내 인생을‘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라는 물음으로 정리했다. 모든 것을 부정한 후로 비로소 긍정의 힘이 돋아났다. 복직 후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대쪽 같은 성격은 결국 퇴직으로 이어졌다.

학교 현장은 가르칠 수 있는 용기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휴직이 아니라 명예퇴직을 택했다. 학교를 떠나는 것만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 판단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가 없다. 이보다 행복할 수 없다. 퇴직 후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의 10년 활동은 힘들었지만, 용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가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업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삶보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수학계를 떠나 학생과 시민의 입장에서 수학교육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 퇴직하지 않았으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지 않았으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인생을 마무리할 뻔한 아찔함이 느껴진다.

수학계에서 시민단체로 옮기니 수학계와 멀어지게 되었다. 수학을 무조건 많이 집어넣으려는 수학계의 이익보다 시민과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는 정책은 정말 인간적인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수학이 인간보다 앞설 수 없다. 삶을 떠나서는 수학교육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천의 수학계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수천 대 일의 대립구도 속에 살고 있다. 수십 년의 동지나 후배 교사가 수학계의 눈치 때문에 다가오기를 망설이는 것을 느낄 때 외로움보다는 씁쓸함을 느낀다. 결코 후회하지도, 겁나지도 않는다. 이럴 때마다 김민기의 노래 <상록수>는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지식 중심의 주입식 교육, 공식의 무조건적인 암기와 문제 풀이 연습으로 얼룩진 한국의 수학교육은 정말 세계적인 조소 거리일 뿐더러 온 국민에게‘수포자’라는 정서적인 열패감을 불러일으켜 왔다. 지난 5년 동안 대안교과서 <수학의 발견>을 제작한 것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이제 아이들은 수포자가 될 필요가 없다. <수학의 발견>은 수포자 발생을 예방하고 치료할 백신이며, 이런 귀중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행운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하는 시민 덕이다. 마지막‘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구절에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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