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더 도어-할리우드 스타일의 러시아산 공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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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픈 더 도어(Stray)

제작연도 2019년

제작국 러시아 연방

상영시간 89분

장르 공포·스릴러

감독 올가 고로데츠카야

출연 옐레나 랴도바, 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 외

개봉 2020년 4월 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팝엔터테인먼트

팝엔터테인먼트

아버지는 자신이 어렸을 때 받은 훈육대로 아이에게 시계를 채워 내보냈다.“분침, 시침 볼 줄 알지? 1시간만 노는 거다.”하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체안치소. 형사는 음침한 목소리로 훼손된 시신이 아이가 맞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부인한다. 의사인 내가 우리 아이도 못 알아보겠느냐고. 3년이 지났건만 아이를 잃은 상실감은 가시지 않고, 더 깊어만 간다. 부부는 보육원에 방문해 아이를 입양하려 한다. 그리고‘그것’을 만난다.

왜 제목이‘오픈 더 도어’일까. 정체불명의 제목이다. 러시아 영화다. 원제는‘Тварь’, 굳이 번역하자면‘크리처(creature)’, 피조물 정도다. 영어 제목 ‘Stray’다. 길짐승이나 떠돌이 정도의 뜻이다. 어느 제목도‘문을 열어!’와는 거리가 멀다.

왜 ‘오픈 더 도어’라고 작명했을까

러시아 호러영화를 과거에 만난 적이 있던가. 일단 떠오르는 것은 국내에서 <마녀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니콜라이 고골 원작의 <비이(Viy)>(1967)가 있다. 그 외에 딱히 떠오르는 러시아산 호러영화가 없다. 아, 이건 러시아 이전의 소비에트연방 체제에서 만들어진 영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되겠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에서도 수많은 공포영화가 나왔다. 고유한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할리우드에서 유행한 B급 호러의‘실상’이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싸구려로 찍은 뒤 영어 더빙으로 출시된 것처럼 소비에트가 망한 뒤 199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러시아산 호러영화는 언어만 러시아어일 뿐, 대부분 서양 공포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그대로 차용해 만들어진 B급 영화들이다. 포스터만 봐도 공포영화 중 어느 서브 장르영화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다.

<오픈 더 도어>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카메라워킹, 구도설정, 내러티브 전개기법 모두 전형적인 할리우드 트레이닝을 받은 감독의 솜씨다. 지난해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북미에서도 4월 8일 개봉되는 영화라 관련 정보는 현재까지 거의 없다. 러시아 쪽 영화사이트를 보니 감독은 1983년생으로 이제 막 단편영화 두 편을 연출하고 장편영화로는 입봉작이다.

앞에서‘그것’이라고 썼지만, 아이다. 수도원 겸 보육원 지하실에서 오랫동안 양육되어 사회성 제로인,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다른 고아보다 유독 이 아이에게 끌린다. 불법이지만 아무런 기록이 없는 아이를 데려와 키웠고, 처음에는 야수 또는 고양이처럼“쌕쌕거리던 그 아이는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엄마는 아이에게 잃어버린 아이의 이름,‘반야’를 붙여주는데 때때로 아이는 섬뜩하게도 반야의 버릇을 그대로 닮아간다. 음식 속 양파를 싫어해 골라내거나 다른 인형은 다 놔두고 호랑이 인형에 집착하는 등. 급기야 엄마는 그 아이가 진짜 잃어버린 아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그럴 리는 없지만 아이가 납치되어 보육원 지하에 감금되어서 몰골이 지금처럼 변한 거라고. 아이가 안정을 되찾으면 원래의 얼굴을 되찾을 거라고…. 아버지는 그런 아내의 집착을 걱정한다. 그리고 임신. 입장은 정반대로 뒤집힌다. 아이의 정체를 알기 위해 병원에 데려간 아버지는 중간에 고장 난 자기공명장치 안에서 아이의 얼굴이 어느 틈에 아들‘반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동생을 임신한 엄마는 그 입양한‘반야’가 질투를 한 나머지 동생과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공포 장르의 보수주의 친화성

영화의 주인공 소년을 둘러싼 갈등을 장애 가정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한다면 이 영화가 치닫는 방향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그런데 장르 자체가 그렇다.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집착하는‘공포’라는 감정은 소수자, 이질적 존재, 동일성으로 재현되지 않는 존재들을 묶어 타자화하는 데서 발화되는 감정이다. 러시아 쪽 자료에 이 영화와 연관시켜놓은 영화가 <오멘>(1976)인데, 여기서 아이의 머리카락 속에서 발견되는 666이라는 기호가 성서 속에서 타자화되어 있는 악마의 숫자가 아니던가.

코로나 정국 때문에 개봉 영화는 씨가 말랐다. 극장에서 시사회를 하는 영화조차 드물다. 이 영화 역시 온라인 시사를 통해 감상했다. 쉽게 대중에게 어필할 기회가 없던 독립영화나 이런 주변부에서 제작된 영화들엔 그게 또 역설적으로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1992년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러시아산 공포영화’를 찾아보진 않았다. 영화를 계기로 하나씩 찾아볼 계획이다.

마녀의 관, 그리고 마녀전설

경향자료

경향자료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고골의 <비이(Viy)>는 <마녀의 관(魔女のひつぎ)>이라는 일본 아동문고의-아마도 무허가-번안 소설판이다. 한국출판공사에서 1978년 출간된 책인데, 필자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벌거벗은 아이의 시체를 들고 있는 마녀를 천장에 숨은 주민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내려다보는 삽화(사진)가 던진 충격 같은 것이 뇌리에 꽂혀 있는 모양이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 책을 상당히 무섭게 기억하고 있고, 나이 들어 구해보려 했으나 아직 구하진 못했다. <코> 등과 함께 실린 고골의 단편선에서 <비이>를 다시 만난 것은 고교 시절이다. 영화로 만난 것은 1989년, 대학교 1학년 때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기 전이지만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실시한 개혁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와 1987년 6월 항쟁의 여진이 남아 있는 때라서 이 소련의 고전영화는‘정우비디오’라는 회사를 통해 <마녀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교과서적인 영화로 책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전함 포템킨>(에이젠슈테인 감독, 1925)도 같은 비디오 레이블에서 출시되었다.

영화로 다시 만난 <마녀전설>은 어린 시절 봤던 <마녀의 관>과는 또 다른 공포를 안겨줬다. 새파란 얼굴을 하고 관에서 일어나 앉았다가 나중에는 관뚜껑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신학생 코마를 찾아다니는 마녀나 영화의 절정부에서 결국 그를 잡기 위해 눈꺼풀이 덮여 있는 괴물 비이를 데리고 와서“저 놈 저기 있다!”며 괴물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장면 등. 그런데 러시아, 정확히‘소비에트 호러’영화는 정말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밖에 없을까.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다른 훌륭한 작품도 많지 않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에서 같은 질문이 이미 수십 차례 반복되었다. 1991년 몰락한‘현실 사회주의’와 공포영화는 원래 궁합이 잘 안 맞았던 모양이다. 다른 나라 영화팬들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비이> 이외에는 없는 듯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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