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오승환에게 도전장 던진 투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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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트레버 호프먼의 별명은 ‘지옥의 종소리’였다. 호프먼이 마운드에 오를 때면 호주 출신 록그룹 AC/DC의 명곡인 <지옥의 종소리>가 홈구장에 울려퍼졌다. 상대팀에는 말 그대로 지옥문 앞에 다다랐다는 종소리인 반면 홈팀에게는 승전가나 다름없었다.

삼성에 복귀한 오승환이 올겨울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도중 웃고 있다./삼성라이온즈 제공

삼성에 복귀한 오승환이 올겨울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도중 웃고 있다./삼성라이온즈 제공

KBO리그에서도 등장곡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삼성의 오승환(38)이다. 그가 등장할 때면 방과 후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야구장에 퍼진다. 경기가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뒤이어 애니메이션 주제곡인 <라젠카 세이브 어스>가 울려퍼진다. 오승환이 세이브로 삼성을 구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대감 속에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대부분 기대에 부응했다.

오승환은 200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줄곧 한 팀에서 뛰며 2013시즌까지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인 277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통산 평균자책점 1.69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며 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3시즌을 마친 뒤 일본 한신과 계약하며 삼성 팬들과 작별을 고했다. 한신 외에도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토론토·콜로라도 등을 거쳤다.

오승환이 다시 푸른색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한 건 지난해 8월. 삼성과 계약하고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2016년 1월 해외 원정 도박 파문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징계를 받아 72경기를 뛸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선수 등록을 한 오승환은 42경기에서 징계를 소화했다. 2020년 남은 30경기를 채우면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언제 프로야구가 개막할지는 미지수지만 오승환의 복귀로 ‘마무리 투수 지형도’에도 변화가 생길 듯하다. 오승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마무리 투수들이 이번에는 도전장을 내미는 상황이다.

‘고승환’ 별명도 얻었던 고우석

삼성과 LG의 연습경기가 열린 지난 3월 2일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눈길을 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삼성 오승환과 그를 롤모델로 삼은 LG 고우석(22)이 나란히 등판한 것이다.

이들은 6회초, 6회말 나란히 마운드에 올랐다. 먼저 오승환이 선을 보였다. 오승환은 1-3으로 쫓아가던 6회초 1이닝 동안 2실점했다. 6회초가 끝난 뒤 고우석이 마운드에 올랐다. 1이닝을 실점 없이 막았다.

고우석은 데뷔할 때부터 자신의 롤모델은 오승환이라고 말해왔다. 고우석은 2017년 4월 17일 잠실 KT전에서 데뷔 첫 등판을 치를 때 150㎞의 공을 뿌리며 홈 팬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묵직한 구위만큼 말에도 무게감이 있었고 다부진 체격이 ‘돌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오승환과 똑 닮았다. 그는 “오승환처럼 임팩트 있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팀의 마무리 보직을 맡아 35세이브(리그 2위)를 올렸을 때도 오승환 이름을 딴 ‘고승환’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날 경기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고우석은 오승환과 나란히 피칭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그는 “처음으로 야구장에서 던지는 걸 가까이에서 보게 됐는데 그냥 ‘와, 멋있다’라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오승환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무슨 영광이냐. 같은 유니폼 입고 운동장에서 던지는 선수다”라며 “그렇게 생각해주면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그 마음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뒤처진 모습을 안 보여줘야 우리 팀이 좋아진다”고 했다.

두 명의 맞대결은 2020시즌에도 종종 볼 수 있을 전망이다. LG는 이번 시즌에도 고우석에게 뒷문을 맡길 예정이다. 오승환과 고우석의 나이는 16살이나 차이가 난다. 롤모델과 그를 따르는 고우석이 피칭하는 모습을 나란히 본다면 세월의 흐름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의 인연 하재훈-오승환

SK 하재훈(30)은 지난 시즌 KBO리그를 뒤흔든 투수였다.

마이너리그, 일본 프로야구, 일본 독립리그에서 주로 야수로 뛴 하재훈은 2019시즌 KBO리그에 데뷔했다. 원래는 야수였지만 데뷔 포지션은 투수였다. 그는 61경기에 등판해 36세이브를 거뒀고 평균자책점도 1점대(1.98)로 마쳤다. 풀타임 투수 전향 첫해에 이룬 기록이다. KBO리그 데뷔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고 SK 구단 최다 세이브 기록도 갈아치웠다. 한 전문가는 “투수 전향 첫해에 어떻게 그런 기록을 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하재훈과 오승환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하재훈은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할 당시 룸메이트였던 임창용(은퇴)의 소개로 오승환과 친분을 쌓았다. 하재훈은 투수로 전향하면서 오승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체력 관리나 피칭한 뒤 팔을 푸는 방법 등의 훈련 노하우를 오승환이 알려줬다.

이런 하재훈에게 오승환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마무리 투수로 안착한 하재훈은 지난해 오승환이 가진 최다 연속 경기 무실점 기록에 도전했다. 하재훈은 30경기까지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6월 23일 두산전에서 실점해 오승환의 31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하재훈은 이제 오승환을 경쟁자로 맞이한다. 하재훈은 지난 시즌을 36세이브로 마무리하며 생애 처음으로 구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어찌 보면 이번에는 오승환이 넘어서야 할 산이 하재훈이 된 셈이다. 하재훈은 “(오)승환 형의 모든 것을 보고 배워 내 것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베테랑 마무리 투수 정우람

오승환의 귀환과 함께 가장 관심을 모으는 구도 중 하나는 베테랑 마무리 투수 정우람(35)과의 맞대결이다.

정우람은 지난 시즌에도 57경기를 소화하며 26개의 세이브를 쌓았다. 통산 세이브 개수는 165개. 이들은 정식으로 경쟁을 펼쳐본 적이 없다. 정우람이 SK에서 처음으로 마무리를 맡아 30세이브를 거둔 2012년 오승환은 37세이브로 구원왕을 차지했다. 2013년 오승환이 28세이브를 쌓았을 때 정우람은 군에 입대했다. 정우람이 제대 후 돌아왔을 때는 오승환이 해외로 떠난 뒤였다.

2020시즌은 실질적으로 정우람과 오승환, 베테랑 마무리 투수가 자웅을 겨뤄볼 수 있는 시즌이 된 것이다.

정우람은 “지난해 젊은 투수들이 참 잘했는데 꾸준해야 한국 야구도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거기에 (오)승환이 형까지 오게 돼서 나 역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오승환은 삼성이 새 시즌 가장 기대하는 투수다. 허삼영 삼성 감독도 “오승환이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고 했다. 오승환은 “포스트 오승환들이 많이 등장해도 실질적으로 나에게 크게 와닿는 것 없다”며 “현재는 내가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오승환은 “나 하나 왔다고 팀이 바뀌고 그런 것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무조건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란 보장이 없으니 더 긴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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