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전설적인 축구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트인낭’이라 불린다. 여전히 온라인에서 자주 쓰인다. 퍼거슨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했고, 이를 줄여 ‘트인낭’이라고 쓴다. 실제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트위터 실수로 고생했다. 썼다가 지워도, 누군가의 캡처로 떠돌아다닌다. 뒤늦은 사과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스포츠 스타는 트위터가 아닌 경기장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게 낫다는 노장의 조언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자이언 윌리엄슨·조지 스프링어·지아니스 아데토쿤보/연합뉴스·AP연합뉴스
2020년 봄, 전 세계 스포츠가 코로나19로 멈춰섰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거꾸로다. 스포츠 스타들의 트위터는 더 이상 인생의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바이러스로 위축되고 어두운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는 역할을 한다.
구장 시급 노동자들 급여 대신 지급
NBA 슈퍼 신인 자이언 윌리엄슨(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은 지난 3월 14일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제가 드래프트된 뒤 뉴올리언스의 많은 분이 응원을 해줘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제가 그동안 만난 가장 특별한 사람들은 홈 경기장 스무디 킹 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경기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팬들이 멋진 경기 볼 수 있도록 쾌적하게 만들어주는 분들입니다. 어머니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고,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된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농구가 중단된 지금, 스무디 킹 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의 30일치 급여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바이러스에 고통받는 우리 동네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이틀 만에 ‘좋아요’ 82만 개, 댓글 1만8000여 개가 달렸다.
NBA가 코로나19 사태로 3월 12일부터 30일간 리그 중단에 들어갔다.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 농구장에서 일하는 시급 노동자들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관객 안내 관련 업무에서 구장 청소까지 상당수의 노동자 일자리가 멈춘다. 자이언 윌리엄슨은 리그가 중단되는 30일 동안 경기장 노동자들의 급여를 자신이 내기로 했다.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윌리엄슨의 연봉은 4년간 4400만 달러(약 553억원) 수준이다.
2018~2019시즌 NBA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지아니스 아데토쿤보(밀워키)가 응답했다. 아테토쿤보도 홈 경기장 노동자들을 위해 10만 달러(약 1억2570만원)를 기부했다. 밀워키 구단은 “이 돈이면 구장 노동자들의 30일치 급여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구단주들도 나섰다.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 마크 큐번은 경기가 열리는 것과 똑같이 구장 노동자들의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급여 지급 때 소득세 문제가 꼬이지만 큐번은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NBA 스타들과 구단들도 이 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케빈 러브(클리블랜드)·블레이크 그리핀(디트로이트) 등도 10만 달러씩을 기부했다. 골든스테이트는 구단·코치·선수들이 100만 달러를 모아 경기장 노동자를 위한 재난구호자금으로 기부했다. 골든스테이트 구단은 경기당 시급 노동자 규모가 약 1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NBA 구단 30개 중 절반 이상이 리그 중단 기간 시급 노동자들의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야구선수들도 합세했다. 휴스턴의 조지 스프링어는 3월 15일 휴스턴 홈구장 노동자들을 위해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메이저리그도 미국 질병관리통제센터(CDC)의 권고에 따라 개막이 8주 연기된 상태다. 휴스턴 내야수 알렉스 브레그먼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가 폐쇄되는 바람에 무료급식을 먹을 수 없게 된 학생들을 위해 휴스턴 푸드 뱅크에 음식 1000키트를 기부했다. 1키트는 도시락 28개분에 해당한다.
선수들의 선행에 이어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나섰다. 30개 구단이 100만 달러씩 내서 3000만 달러짜리 기금을 만들었다. 이 기금을 통해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일하는 시급 노동자들의 생계를 돕는다. 야구가 멈추면 이들의 일자리도 멈춘다. 코로나19 방역에 힘쓰는 이들 말고도 코로나19에 따라 ‘부수적인 피해’를 보는, 잘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들을 돕는 길이 스포츠 스타들의 트위터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대응 동영상도 인기
<월스트리트저널>은 NBA 스타 스테픈 커리의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소개하며 “스포츠 스타는 코로나19 사태 대응 관련 누구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중요한 메시지의 ‘확성기’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커리는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 속에서 커리는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지만, 우리 모두 용기를 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커리는 “우리의 노력이 모여서 확진자 수 커브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 메시지를 널리 널리 퍼뜨려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자”고 덧붙였다. 커리의 영상은 트위터에서 조회수 245만 회가 넘었고, 인스타그램에서 160만 회 넘게 재생됐다.
아데토쿤보는 NBA 시즌이 중단되자 트위터를 통해 “지금 농구는 두 번째 문제다. 여러분과 가족을 잘 돌봐야 할 때”라며 “손을 자주 씻읍시다”라고 적었다. 이 트윗 역시 1만 리트윗과 함께 ‘마음에 들어요’ 9만여 개를 받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코로나19로 취소된 뒤 트위터에 “지금 골프 토너먼트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우리 인생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해야 하고 현명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 우리 사회를 위해 최선의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나 정치인보다 스포츠 스타들의 메시지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의 습관을 바꿀 수 있다”며 “스포츠 스타의 경우 공중보건, 건강 관련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스포츠 스타는 건강을 상징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NBA 첫 확진자인 뤼디 고베르(유타 재즈)는 NBA 공식 트위터에 올린 셀카 영상에서 “비누로 손을 자주 씻고, 얼굴·코·눈을 만지지 마세요. 불필요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확진 선수의 메시지는 더욱 큰 울림을 줬다.
세계적 인기를 끄는 축구 스타들도 코로나19 대응 홍보에 나섰다. 폴 포그바(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4000만 명이 팔로 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기침 예절 영상’을 올렸고, 이틀 만에 ‘좋아요’ 100만 건을 넘겼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