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브래디(43). 현역을 떠나 역대 최고로 꼽히는 미국프로풋볼(NFL)의 아이콘.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쿼터백 브래디가 요즘 NFL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2011년 데뷔 이래 줄곧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한 팀에서만 뛰어온 그는 별 볼 일 없었던 뉴잉글랜드를 일약 NFL 역대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만들어놨다. 그런 브래디가 생애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가 됐고, 미국 언론은 브래디가 뉴잉글랜드를 떠나느냐, 남느냐로 시끌시끌하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뉴잉글랜드에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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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디는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브래디를 두고 뉴잉글랜드의 입장이 뜨뜻미지근하다. 브래디, 로버트 크래프트 뉴잉글랜드 구단주와 함께 뉴잉글랜드 왕조를 만들어낸 3명의 주역 중 하나인 빌 벨리칙 뉴잉글랜드 단장 겸 감독은 지난 1월 뉴잉글랜드가 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라운드에서 떨어진 뒤 브래디의 향후 행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크래프트 구단주는 “내 첫 번째 바람은 내년에도 브래디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가 은퇴했으면 한다. 그게 내 두 번째 바람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달 초 브래디와 벨리칙 감독이 전화로 대화를 나눴으나, 잘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실 뉴잉글랜드 입장에서 브래디를 놓친다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따른다. 오랜 기간 팀 공격의 핵심을 담당해온 쿼터백이 떠난다면 뉴잉글랜드의 시스템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뉴잉글랜드가 ‘당연히’ 잡아야 할 브래디와 계약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데뷔 이래 뉴잉글랜드에서만 뛰어
뉴잉글랜드는 지난해 12승 4패로 11년 연속 아메리칸풋볼콘퍼런스(AFC) 동부지구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4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달성한 메이저리그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94년 파업 시즌 제외)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그 기간 무려 9번이나 슈퍼볼에 올랐고, 그중 6번을 우승했다.
하지만 장기집권은 선수단의 ‘고령화’라는 숙제를 안겼다. 성적이 너무 좋다보니 매년 열리는 신인드래프트에서도 중·하위권 지명이 많았고, 새로운 피가 수혈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난해 뉴잉글랜드의 선수단 평균 연령은 27.8세로 NFL 32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았고, 30세 이상 선수들의 비중 역시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기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뉴잉글랜드는 지난해 팀 득점이 420점으로 지난 시즌 436점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하지만 순위는 전체 4위에서 7위로 떨어졌다. 실점을 지난해보다 100점을 줄인 강력한 수비 덕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들의 공격력 상승과 비교하면 분명 문제는 있었다.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뉴잉글랜드의 발목을 잡고 뉴잉글랜드의 디비저널라운드 직행을 막은 마이애미 돌핀스(5승 11패)의 평균 연령이 25.7세로 32개 구단 가운데 최연소였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래서 뉴잉글랜드에 세대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세대교체의 신호탄은 브래디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브래디를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팀의 시스템을 기초부터 갈아엎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NFL 뉴잉글랜드의 톰 브래디 / AP연합뉴스
그러나 세대교체는 미래지향적인 이유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이유는 돈을 쓸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브래디는 지난해 8월 뉴잉글랜드와 2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브래디는 지난해 2300만 달러(약 275억원)의 연봉을 받았고, 올해는 3000만 달러(약 359억원)를 수령한다. 그런데 이 계약에는 한 가지 특별 조항이 있다. 뉴잉글랜드는 연장계약을 맺으며 시즌이 끝날 때마다 브래디가 원하면 FA가 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FA 시장에 나오면 달려들 팀 많아
NFL은 오랜 기간 샐러리캡을 유지해오고 있다. 샐러리캡은 하드캡과 소프트캡, 두 가지로 나뉘는데 NFL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선수단 총연봉이 상한선 이상을 넘으면 안 되는 하드캡이다. 올해 뉴잉글랜드의 남은 샐러리캡은 1350만 달러(약 161억원)로, 이 돈으로 전력보강을 하기 쉽지 않다.
브래디는 데뷔 후 단 한 번도 FA가 된 적이 없다. FA 자격을 얻을 기회가 무수히 많았지만, 브래디는 늘 좋은 팀 전력을 유지하고 싶어해 연봉 손실을 감수하며 FA를 앞두고 팀이 제시하는 연장 계약에 꼬박꼬박 도장을 찍었다. 브래디가 선수 기간 받은 연봉을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고작(?) 1500만 달러(약 179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받은 2300만 달러의 연봉도 NFL 쿼터백 중에서 11위에 불과했다. 브래디는 3월 18일 이전까지 뉴잉글랜드에 FA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줘야 하는데, 현재 분위기는 FA를 신청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브래디가 FA 시장에 나오면 달려들 팀은 많다. 당장 라스베이거스 레이더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등이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LA 차저스가 유력한 행선지로 거론되고 있다. 차저스는 올해부터 홈구장을 신축 구장인 소파이 스타디움으로 이전한다.
새 홈구장에는 스타가 필요한 법. 그래야 티켓 판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브래디는 구단 입장에서 수익 증대를 노릴 수 있는 최선의 카드다. 브래디는 지난 3월 9일 할리우드 진출을 목적으로 한 합작 프로덕션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할리우드가 있는 곳이 로스앤젤레스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지난해 1월 ‘역대 최고의 스포츠 왕조는 어디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온라인 공개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뉴잉글랜드는 무려 58%의 지지를 얻어 마이클 조던이 활약했던 1990년대 시카고 불스를 큰 차이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브래디의 거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차기 시즌에는 오랜 기간 시대를 지배해왔던 왕조의 몰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윤은용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