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늘고 있다. 그런데 노트북PC 한 대로 일을 끝낼 수 있는 일부 직종이 아니라면, 원격으로 정말 일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부하든 기계든, 아니면 비정규직이든 원격 조종할 대상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일 자체가 특권이 된 셈이다.
위기는 불평등을 드러낸다. 같은 재택근무라도 아기 아빠의 재택근무와 엄마의 재택근무가 같을 리 없다. 재택을 할 수 없을 때의 젠더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다. 육아 부담이 치우쳐져 있는 사회에서, 사실상 탁아소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교육기관이 전부 휴교 중이라서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고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고객과의 거리를 띄워 놓을 수는 없는 직업은 수도 없이 많다. 보통 고객 접점이 되는 서비스업 종사자 중에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조직에서 계급이 올라갈수록 커튼 뒤로 숨을 수 있다. 첨단 IT는 얼마든 현장의 가시성을 투명하게 높여준다.
정규직이 누리는 특권에 서러워진 이상 대기업·공기업 선호는 더해갈 것이고, 자연스럽게 일이 다 끊기게 되고 만 프리랜서를 본 이상 ‘창직(創職)’을 해보려는 시도는 급감할 것이다. 부하와 선배가 아이 돌봄에 쩔쩔매다 조직 내 입지를 잃는 모습을 본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도 자명하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위기의 여파가 달라지는 경험은 그 처지에 나를 놓이게 한 그 어떤 선택을 후회하게 만든다. 모험을 두려워하게 하고, 특권에 집착하게 한다. 이미 이런 경향이 충분한 사회에 이번과 같은 장기적 시련은 우울한 시그널을 남긴다.
개개인도 정치권도 모두 정규직이 되는 세상이라는 판타지에 더 깊이 빠질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정규직에 안주하지 않는 결심만이 꽃피우는 일도 있다. 긱 이코노미의 ‘긱(gig)’이란 원래 하룻밤 연주와 같은 비정규의 일거리를 말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 수많은 성취는 그런 긱에서 시작한다. 양반댁 노비의 삶이 편한 줄 알지만, 구태여 뜨내기와 광대의 삶을 살려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세상은 꿈꾸는 비정규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정규직이란 정규직이 되지 못한 도태가 아닌, 어엿한 삶의 선택으로 여겨지도록 ‘동일노동·동일임금·동일처우’가 이뤄져도 모자랄 판인데 점점 이등 시민으로 여겨질 서러운 일만 이어진다. 그 서러움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포용의 경제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코로나19가 강타한 미국 워싱턴주. 포용의 리더십을 먼저 보인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오피스를 닫고 모두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오피스를 돌보던 비정규직들에게 시간당 임금을 그대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 뒤를 아마존 등 다른 IT 기업들이 뒤따랐다.
비슷한 시기 현대차는 정규직에는 1급 방진 마스크를, 비정규직에는 보온용 방한대를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빈축을 샀다. 포용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지만, 보통은 그게 잘 안 되나 보다. 그렇기에 사회는 세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추경예산은 11조7000억원이나 마련되었지만, 임시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 등 정규 시스템 밖의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별로 없는데도 화제조차 되고 있지 않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