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애창곡, 가사 너머의 서글픈 연가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이 노래는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은 아버지의 애창곡이었다. 어른들의 술자리에서 이 구슬픈 선율을 낮게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내가 말을 배울 즈음 거실에서 녹음했다는 기념용 카세트테이프에서도 아버지는 이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내 인생의 노래]산울림 <청춘>](https://img.khan.co.kr/newsmaker/1369/1369_70.jpg)
종종 작은아버지들이 모이면 형님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라며 흘러간 노래들을 부르곤 했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따라잡기 힘든 옛 노래들 일색이었다. 내 순서가 돌아오면 뭘 부르나 맘 졸이던 나는 문득 이 노래를 생각해냈다. 나도 어리고 삼촌들도 젊었던 1981년의 곡. 아버지가 즐겨 불렀다는 명분이 있으니 대강 앞 소절만 불러도 충분했다. 그러나 난 결국 이 노래 대신 다른 곡을 골랐다.
아마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는 첫 소절부터 아버지의 길지 않았던 삶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굳이 가족에게도 그런 연상을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난 부모님이 종종 부르던 다른 유행가인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불렀다. 그 곡 역시 앞부분 외에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작은아버지들이 받아서 뒤 소절을 부르며 그렇게 내 순서가 무사히 넘어갔다.
사실 <사랑이여>의 가사도 ‘가버린 것’들로 가득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청춘>에는 좀 더 인생 자체의 덧없음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노래의 시적 효과이든, 주술적 힘이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의식했던 것이다.
몇 년 뒤 라디오에 출연해 이 곡의 작곡가인 김창완 선배를 만날 일이 있었다. 짧은 방송이라 <청춘>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좀 더 우스웠던 기억인 <산할아버지> 얘기를 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TV를 보다가 어머니께 저 사람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얘기였다. 마이크 너머로 선배 특유의 당혹스러워하는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나는 순간 <청춘>의 작곡가가 내 앞에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다. 그것도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듯 왕성한 에너지로 말이다. <청춘>에서 너무 많은 서글픔을 읽은 건 나의 착각이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최근 나는 <청춘>의 가사 전체를 보고 싶어 검색을 한 번 해보았다. 글로 읽은 가사 속 청춘은 사실 ‘인생’이라기보다 ‘한창’이라는 의미의 청춘인 듯했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의 세월도 지지부진한 연애로 끝나는 듯한 몇 년인 것 같았다. 어쩌면 아버지도 몇 줄 뒤에 나오는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같은 분위기나 쉬운 멜로디 때문에 즐겨 불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노래에는 가사로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긴 있었던 것 같다. 가사 전체를 올려놓은 블로거 역시 이렇게 적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 김창완은 27세에 이런 곡을 썼다.’ 본의든 아니든 어떤 27세는 오래전 가사 한 줄로 인생 전체를 슬쩍 건드렸던 것이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 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김목인 싱어송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