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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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해준 동력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배우가 꿈이었지만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20여 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배우의 꿈에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일주일에 한 번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극을 가르치고, 직접 무대에 서게도 해준다는 공고가 있었다.

[내 인생의 노래]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2005년 3월 양재동 소극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쭈뼛쭈뼛 서로 눈치만 보고 앉아 있었다. 얼핏 보니 내 나이가 제일 많은 듯했다. 연출가처럼 보이는 중년의 사내와 흰머리 어르신 그리고 낚시복장 차림의 아저씨…. 다 늙은 아저씨들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들’은 사업가이자 연극인인 김인수, 채상근 시인 그리고 크라잉넛의 프로듀서 이석문이었다.

현대건설 홍보부장인 나를 포함해 40~50대 초반의 우리는 금세 의기투합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연기혼을 불태웠다. 노장파 4인방의 인연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매년 부부동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한다.

이석문의 소개로 우리는 크라잉넛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 당시 크라잉넛은 <말달리자>와 <밤이 깊었네>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흥이 많은 나는 콘서트 뒤풀이에서 춤을 췄고,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농담까지 했다.

우리 아마추어 연극배우들은 즐겁게 놀면서도 수업을 받는 동안 각자 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큰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은퇴 후 생각지도 않았던 연기자가 됐다. 20년간 미뤄뒀던 꿈, 소중히 품어왔던 취미가 직업이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면서 젊은 배우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도 얻고 함께 연습도 했다. 여기서 점잔을 빼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나는 더 신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때 쓸모가 많은 곡이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다. 이 노래를 열창하면 “와~” 하는 환호와 함께 호칭이 금방 선생님에서 형으로 바뀐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촬영할 때 고사 겸 1박2일 캠프에 참가했다. 각자 장기자랑을 하는데 나는 친한 배우들도 없고, 나이 차도 많이 나 한구석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그게 날 배려하는 뜻일 수도 있었다. 젊은 배우들의 노래가 대충 끝나고 파장하려는데 내가 벌떡 일어났다. “저도 하나 하겠습니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내 노래와 춤으로 판은 삽시간에 뒤집어졌다. 앙코르 요청과 함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인기상은 내 차지였다.

본 촬영을 할 때 현장에서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니 노래 하나로 단박에 많은 친구가 생긴 것이다. 뒷자리로 물러나기엔 내 피가 아직 뜨겁다. ‘오늘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 <밤이 깊었네>는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나를 현재 진행형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하나둘 피워오는 어린시절
동화 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노래하는 그 불빛들
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
오늘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김정수 배우(영화 <복어> 등 다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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