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대학생 동생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다. 동생이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형의 꾐에 빠져 휴대폰을 개통해서 넘겨주었는데, 휴대폰 요금이 미납돼 곤경에 처했다는 것이다. 아는 형은 “3개월 뒤엔 해지할 거고, 요금은 내가 책임진다”고 했지만, 소액결제까지 포함해 미납요금이 600만원이 되도록 그 형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혼자 속을 끓이다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된 부모님이 아들이 신용불량자가 될까봐 요금을 대신 갚아주셨다고 한다.
대학생인데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면 대학교수도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는 세상에서 사회 경험이 전무한 20대 청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싶었다. 취업이나 아르바이트의 기회가 많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당하는 피해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휴대폰 가개통 사기’를 검색해보면 유혹의 글과 피해 사례가 너무 많다.
휴대폰 가개통은 통신사 본사에서 대리점에 공급한 기기를 미리 개통시켜 일정 기간 통화량을 발생시킨 뒤 해지를 해 기계를 다시 파는 유통방식이다. 대리점은 실적을 채울 수 있고, 소비자들은 기기를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이러한 기형적인 유통방식이 암암리에 확산되었다.
해지되기 전까지 내 명의의 휴대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따라 나에게 돌아오는 피해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내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휴대폰 소액결제 서비스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고, 소액결제한 돈에서 수수료를 떼고 현금을 받는 ‘소액결제 깡’을 이용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휴대폰 명의자가 그 돈을 부담해야 한다. 기기값과 휴대폰 요금 외에 소액결제 금액까지 더하여 매달 수백만원의 요금 폭탄이 명의자에게 청구될 수 있다.
휴대폰에 꽂혀 있는 유심카드를 넘기는 행위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하고, 만약 그 휴대폰이 보이스피싱에 이용된다면 휴대폰 명의자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공범이 되어 처벌될 수 있다. 요금 폭탄의 피해자가 될 뿐 아니라 전과자까지 될 수 있다. 실제로 휴대폰을 넘겨주었다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고소도 하고 민사소송도 하고 싶지만, 내가 처벌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고소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실제로 지인의 동생은 경찰을 찾아갔다가 “민사로 해결하라”는 소리만 듣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동생의 아는 형도 이런 점을 노렸을 것이고, 피해자는 더 생길 수밖에 없다.
요즘은 은행에서 이체할 때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나와 조심하게 된다. 휴대폰을 개통할 때, 내 휴대폰과 유심카드를 넘기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명확하게 정보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개개인이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형적인 유통방식을 개선하는 통신사와 정부 차원의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