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환경정책 근간‘국가환경정책법’개정 등 정책 뒤집기·후퇴 약 100건
“그는 자신을 반연방규제 운동의 우두머리로 여긴다…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오염 배출자를 지원하려 하고 산타바바라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리는 뻔뻔한 짓을 하지 않았다.”
미국 라이스대에서 대통령의 환경정책을 연구해온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가 1월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밝힌 내용이다. 브링클리가 언급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이날 반세기 동안 환경정책의 근간이 돼온 국가환경정책법(NEPA) 개정을 선언했다. 이는 지난 3년간 트럼프가 추진해온 ‘환경정책 뒤집기’의 결정판이다. 트럼프는 지구 온난화를 “사기”라고 주장해왔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액션플랜(CAP)을 철회할 것이라고 밝힌 그는 취임하면서 반환경주의자를 환경 주무 부서인 환경보호청(EPA) 수장에 앉히는 등 예고대로 환경정책 뒤집기를 밀어붙였다. 그해 6월 1일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 말 기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환경규제 뒤집기나 후퇴 사례는 95건에 이른다. 역대 행정부 중 가장 많다. 트럼프를 ‘환경파괴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는 그의 환경파괴 행보는 ‘경제’와 ‘일자리’에 방점을 둔 채 미래세대에 모든 부담을 떠안기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는다. 안 그래도 트럼프의 등장으로 핵전쟁 위험성이 가중되고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비난이 만연한데, 인류는 이제 그의 환경파괴에 따른 기후변화 재앙까지 떠안게 됐다.
뒤집기 추진 사례 60%는 이미 성공
지난해 12월 21일 <뉴욕타임스>는 하버드대 로스쿨, 컬럼비아대 로스쿨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트럼프 행정부에서 환경규제나 규칙이 후퇴한 사례는 모두 95건이라고 보도했다. 95건 가운데 58건은 이미 뒤집혔고, 37건은 진행 중이다. 대기오염 및 배출 관련은 25건이다. 16건은 뒤집혔고, 9건은 진행 중이다. 시추 및 채굴 관련은 19건(뒤집힌 경우 10건·진행 중 9건), 인프라 및 계획 관련은 12건(11건·1건), 동물 관련은 10건(7건·3건), 독성 물질과 안전 관련은 8건(5건·3건), 수질오염 관련은 10건(4건·6건), 기타 11건(5건·6건)이다. 하버드대 로스쿨의 환경 및 에너지법 프로그램의 케이틀린 맥코이는 “트럼프 행정부는 환경 규칙을 후퇴시킬 때 종종 ‘원투 펀치’를 사용해왔다”면서 “첫째는 시간을 벌기 위해 규칙을 지연시키는 것이고, 다음은 실질적인 규칙”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트럼프가 지난 1월 9일 개정을 선언한 NEPA는 청정대기법(CAA)·청정수질법(CWA)과 함께 반세기 동안 환경 법안의 기반 역할을 해왔다. 핵심 내용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의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시행이다. NEPA는 1970년 1월 1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이 법의 계기는 1969년 1월 28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해안에서 원유 시추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다. 이 사고는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결국 ‘지구의 날(4월 22일)’ 제정을 이끌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연방기관들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에 따른 누적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도 포함돼 화석연료 관련 프로젝트가 환경영향평가로 지연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2년 이내에 완료(대형 2년, 소형 1년)하도록 하고 있다. 백악관 환경위원회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고속도로 7년 등 4년 반이다. 요약하면 개정안은 송유관이나 도로, 교량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 추진에 환경영향평가 부담을 대폭 줄이는 방안이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 프로젝트는 터무니없이 느리고 견디기 힘든 연방 승인과정에 묶여 수렁에 빠졌다”면서 “건축업자는 물론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법은 60일간의 여론수렴기간과 두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가을쯤 결론이 날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전망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9월 18일 차량 배출가스 기준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권한을 취소하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는 그 이유로 자동차를 더 안전하고 더 싸게 만들고, 많은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그동안 청정대기법에 따라 연방 기준을 면제받고 이보다 더 엄격한 차량 배출가스 기준을 제정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주가 자동차 배기가스와 관련한 연방 법률이 제정되기 전부터 독자 기준을 시행해온 덕분이다. 이 제도는 1970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주지사 때 도입했다. 이후 다른 13개 주와 워싱턴DC가 이 기준을 채택하면서 전국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는 2017년 10월 9일 오바마 행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안인 ‘청정전력계획(CPP)’ 백지화를 선언하고 ‘적정청정에너지(ACE)’ 추진을 발표했다. 이듬해 8월 21일 앤드루 휠러 미 환경보호청(EPA) 청장대행은 ACE가 온실가스 배출규제에 관해 각 주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CPP는 신규 화력발전소 동결,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05년보다 32%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ACE에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다. EPA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연 4억 달러의 규제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아니라 화석연료 산업을 되살리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뉴욕주 등 22개 주는 EPA가 청정대기법이 부여한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면서 ACE 통한 석탄화력발전 규제 완화 시도에 반발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9월 10일 EPA는 오바마의 메탄 배출규제 완화 수정안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6개월마다 하는 메탄 누출 점검을 1년에 한 번으로 완화하고, 메탄 누출 장비 수리기간도 기존 30일에서 60일로 늘린다. 이에 따른 에너지 기업들의 비용 절감 규모는 2025년까지 4억84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뉴욕타임스> 전망했다. 메탄은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의 9%를 차지한다. 대기의 열기를 가두는 데 이산화탄소보다 25배나 강력한 효과 발휘한다. 메탄 오염의 3분의 1은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뒤집기에 대한 반발도 증가
미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프로젝트팀이 지난해 9월 24일 내놓은 분석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의 환경 뒤집기 시도에 따른 반발 또한 증가세를 보였다. CSIS는 “트럼프가 CPP를 ACE로 바꾸는 목적은 대체가 아니라 ‘CPP 2.0’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래의 EPA가 청정대기법 제111조를 활용해 전력 부문에서 더 많은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려는 걸 막을 목적이라는 것이다. 천연가스 부문을 겨냥한 메탄 배출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청정대기법 무력화 목적은 미래 EPA가 청정대기법 하에서 메탄을 규제하는 능력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배제하는 기후정책의 도구로 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운송 부문을 겨냥한 차량 배출가스 기준 권한 취소도 “현재 기준을 완화하거나 후퇴시키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장래에 캘리포니아주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주들을 운송 부문의 기후정책 방정식의 중요한 부분에서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CSIS는 트럼프의 환경규제 변화에 대해 많은 기업들과 무역 단체들이 환영하는것은 분명하지만 각 산업의 대응은 일치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전력 부문의 경우 세대 변화 요구를 없애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세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석유 및 천연가스 부문에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메탄 누출을 줄이기 위한 광범위한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BP나 쉘, 엑손 같은 에너지 기업은 자발적 기준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보고 연방의 메탄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동차 기준은 역대 행정부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규제 및 법적 혼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최악의 경우, 업체들은 주마다 다른 모델의 차를 생산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CSIS는 진단했다.
요약하면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가 미래 행정부의 같거나 또는 더 과격한 규제의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CSIS는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청정대기법을 무력화하려는 아젠다는 법정에서 흔들릴 수 있으며, 더욱이 차기 행정부가 주요 에너지 및 환경규제를 강화하거나 철폐할 때 주 정부는 연방정부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뒤집기 과정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일부는 법적 토론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고, 관련 기관들은 대중에게 알리고 의견을 요청하는 것과 같은 규칙 제정 과정의 주요 단계를 건너뛰기도 했다. 법원에 막히는 경우도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시도를 중단하기 위한 법적 소송은 약 70건이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긴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뉴욕대 로스쿨의 주에너지환경영향센터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환경 후퇴는 온실가스 배출을 심각하게 증가할 수 있으며, 매년 공기의 질에 취약한 계층에서 수천 명의 추가적인 사망자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제 역할 잃은 환경보호청
미국의 환경정책 주무기관이 환경보호청(EPA)이다. EPA는 산타바바라 환경 재앙을 계기로 1970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 출범했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청정에너지 사용을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을 뒤집고 화석연료 사용 증가와 환경규제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트럼프의 취임으로 EPA는 철퇴를 맞았으며 그의 반환경정책 추진 도구로 전락했다. 그 결과 EPA의 2018년 예산안은 31%(25억 달러)나 삭감됐다. 추진하려던 프로그램은 축소되고, 인력은 줄어들었다. 대신 EPA 수장에는 반환경론자를 앉혔다. 첫 청장 스콧 프루이트는 오클라호마주 검찰총장 출신이다. 그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제공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환경보호 정책의 철폐에 앞장섰던 그는 예산 낭비와 직원 부정청탁 등 의혹에 휩싸이다 2018년 7월 사임했다.
후임 앤드루 휠러 현 청장은 2018년 4월 부청장이 됐다. 당시 ‘환경워킹그룹’의 켄 쿡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 환경정책에 적대적인 오랜 역사를 지닌 석탄 및 화학 산업 로비스트가 EPA의 2인자가 된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휠러는 프루이트 사임에 따라 2018년 7월 청장대행을 맡다가 2019년 2월 청장이 됐다. 변호사인 휠러는 화석연료 사용 지지자로, 대표적인 석탄산업 로비스트다. 오바마 환경규제 철폐에 앞장선 로펌에 근무했으며, 미 의회 대표적 기후변화 부정론자인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과 일하기도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1월 15일 “지난해가 2016년에 이어 1880년 관측 시작 이후 두 번째로 더운 해였으며, 지난 10년(2010~2019)은 가장 더웠던 10년”이라고 밝혔다. 8일 뒤인 1월 23일에는 ‘운명의 날 시계’를 운영하는 미 핵과학자단체 ‘핵과학자회’가 시계를 자정 100초 전으로 조정했다. 지난해보다 20초 당겨진 것으로, 1947년 발표 시작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다. 핵무기 위험과 함께 기후변화가 요인이었다.
지난해 인류는 호주와 미 캘리포니아주를 휩쓴 재앙적인 산불로 기후변화의 매서움을 맛봤다. 2020년 전망은 여전히 불길하다. 트럼프는 제러미 리프킨이 지난해 출간한 책 <글로벌 그린 뉴딜>에서 “2028년이면 화석연료 문명은 끝난다”고 한 걸 믿든 안 믿든, 알고 있기나 할까.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