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소믈리에’ 이현주씨 “우리 술 ‘천대’받는 게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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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술 한잔에는 뭔지 모를 기분 좋은 맛이 담겨 있다. 이현주씨(52)는 맛있는 술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리는 ‘전통주 소믈리에’다. 사실 집에서 빚는 술 ‘가양주’는 오래도록 금단의 영역이었다. 일제가 내린 가양주 금지령은 1996년에서야 풀렸다.

그는 외식업에 몸담으며 와인을 공부하던 2010년, 우연히 쌀로 빚은 약주를 맛보고 전통주에 눈을 떴다. 2년 뒤 전통주 소믈리에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 초대 관장을 지냈다. 최근 이씨는 그동안 보고 듣고 마시고 느낀 증류주·약주·탁주 등 28개 전통주 이야기를 담은 첫 저서 <한잔 술, 한국의 맛>이란 책을 펴냈다.

[주목! 이 사람]‘전통주 소믈리에’ 이현주씨 “우리 술 ‘천대’받는 게 안타까워요”

“시작은 ‘설렘’이었어요. 우리 전통주가 덜 알려져 있다 보니 어떤 맛일까 궁금했죠. 지금은 ‘새로움’이에요. 400~500년 전 옛 문헌에 담긴 방식대로 술맛을 끄집어내는 작은 양조장들이 늘고 있거든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문헌 속에서 잠자던 유물들이 걸어다니는 느낌이랄까요.”

3년 8개월간 갤러리 관장으로 쉴 틈 없이 살았다. 지난해 11월부터 넉 달간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국 음식과 술이 그리워질 무렵,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봄비에 젖은 까만 기왓장에 낀 푸른 이끼 같은 느낌’, ‘한복 치맛자락을 잡은 무용수가 눈길을 발끝에 주고 버선발 한쪽을 당겨 든 듯한 살폿함’. 여행자였기에 술맛이 풍부해졌는지도 모른다. ‘마시고 취하는 것만이 술꾼의 자세는 아니다’라는 구절도 눈에 띈다.

“이제는 배고픈 시대가 아니잖아요. 유독 술만큼은 아직도 ‘부어라, 마셔라’ 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기는 분들은 변화의 상징이 됐는데, 소주나 막걸리는 그냥 마셔도 되는 술로 ‘천대’받는 게 안타까워요. 흥청망청 마시고 취하지 않아도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해요. 발효 과정을 볼 수도 있고, 역사나 문화적 배경을 살펴볼 수도 있고요. 술자리 게임만 즐거운 게 아니죠.”

깨뜨리고 싶은 오해도 있다. ‘한국의 전통주가 너무 달아 반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씨는 “단맛이 나는 누룩향이 적당히 배어 있는 술은 짭짤한 나물반찬 같은 밥상의 맛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며 “한산소곡주, 경주 교동법주 등이 일반적인 한국 밥상 차림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연말이나 새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술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사는 지역에서 나는 술에 눈을 돌려 보라”고 권한다. 잘 알려진 전통주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찾아내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작은 양조장 대다수가 전통 누룩과 그 지역 농산물을 쓴다는 정보도 귀띔해줬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으니 보이는 게 많다. 전통주를 둘러싼 주세법과 정책의 문제는 현장에 맡겨두고, 자신은 전통주의 맛과 재미를 전하는 데 힘쓰고자 한다. 정보 중심의 책 한 권을 더 쓰고, 유튜브 방송도 해볼 생각이다. 한마디로 술맛 나는 인생이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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