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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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즈음에’ 상처가 제대로 아물길 바라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내가 유일하게 가사를 외우고, 지금도 부르기 좋아하는 노래가 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다. 71년생인 나는 20대 후반이던 90년대 끝자락, 그야말로 ‘서른 즈음에’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이 곡의 노랫말이 당시 세파에 지친 내 마음을 많이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노래]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1997년 늦은 가을, 많은 선배들의 희생으로 민주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는 느낌이 들 무렵이었다. 열심히 하면 안분지족의 삶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쌓여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제부총리가 TV에 나와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됐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이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무지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꽤나 잘나가던 친구 아버지는 부도가 나서 종적을 감췄다고 했다. 우리 막내이모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나와 내 동기들도 당장 취업전선에 먹구름이 끼었다. ‘취업대란’이란 말도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사람을 잘라도 모자랄 판에 기업들이 사람을 뽑을 리 만무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100만 수험생’을 돌파했단 말을 들을 때도 대학에 진학했고, 역경이 있어도 어느 반 급훈처럼 ‘하면 된다’는 의지로 살았는데, 이건 달랐다. 아주 가혹하고 잔인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했지만, 나의 의지와 달리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일어나려 애써 보지만 희망은 점점 더 멀리 사라지고 좌절감만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와 나의 동기들은 종종 술잔을 기울였고, 나는 이 노래를 매번 불렀다.

2019년 늦은 가을, 20여 년이란 세월이 한순간의 꿈결처럼 ‘매일 이별하며’ 흘렀다. 며칠만 지나면 내 나이도 ‘오십’이란다. 수험생을 둔 아버지가 됐다. 미디어에서는 줄기차게 ‘100세 시대’를 외치지만, “언제 오십이 됐냐”는 혼잣말이 한숨에 섞여 나올 때가 많다.

이 노래로 나를 위로하던 서른 즈음의 상처는 이미 딱딱한 살갗이 되어 아물었다. 외환위기도 이미 역사책에서나 접하는 아들·딸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나아져서 아문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나와 우리 사회가 그 힘듦에 적응한 것뿐이다. 외환위기는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저런 평균은 올랐지만 편차도 심해져 이제 ‘10 대 90’의 양극화 사회가 됐다. 산업현장에서는 수시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지금 청년들도 그날의 나처럼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나와 우리 사회가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제 ‘함께’라는 가치일 것 같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해서는 미래가 없다. 자신의 아들·딸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의 자식 세대를 걱정하는 진정 어른스러운 사회가 필요하다. 아프게 겪었고, 그리고 지금도 우리 현실에 큰 흉터로 남아 있는 외환위기. ‘쉰 즈음에’ 조금씩이라도 상처가 제대로 아물길 바라며, 나의 애창곡 <서른 즈음에>를 불러본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세종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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