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을 앞둔 교양잡지 월간 <샘터>가 폐간하려 했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계속 내기로 했다.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하던 <녹색평론>도 매우 고통스럽게 지령을 이어가고 있다. ‘잡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잡지만이 아닌, 신문·단행본 등 종이매체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모든 정보가 손안의 모바일로 제공되는 요즘 종이매체를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어진 탓일 것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 “이제 인문학 본질이 달라졌다”](https://img.khan.co.kr/newsmaker/1355/1355_36.jpg)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61)이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도 지령 500호를 끝으로 접으려 했다. 종이잡지의 한계와 단행본 시장의 침체라는 ‘이중고’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주변의 간곡한 반대와 도움으로 계속 발행하기로 했다. 오히려 그는 단행본 전문 출판사를 몇 개 더 만들면서 출판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두 망한다며 손을 떼는 ‘종이 시장’에 승부를 거는 이유는 뭘까. 그 비결을 듣기 위해 지난 11월 22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령 500호 맞은 격주간지 <기획회의>
-<기획회의> 지령 500호 축하한다. 권두칼럼을 보니 ‘20년 10개월 동안 지쳤다’고 토로했다.
“북뮤지션 제갈인철이 보낸 편지다. (편지에는 ‘제대로 글을 써본 적 없는 저에게 <기획회의> 지면을 선뜻 내어주시고 책으로 묶어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셨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무명·신인 필자의 꿈과 희망을 준 매체가 사라진다는 것에 반대·하소연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이 <기획회의>가 후배들에게 짐이 될 것 같아 미리 정리하려 했다고 했다. 적자가 나는 회사라서인가.
“내가 그만두면 광고를 주지 않고 결국 수지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한 달에 강연 20회, 원고 500매를 써서 번 돈을 여기에 집어넣었다. 더 이상 그렇게 ‘몸을 팔’ 자신이 없었다.”
-<기획회의>는 우리 출판의 역사이기도 하다.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는 정부나 출판지원 단체에 지원을 요청하면 되지 않나. 출판 관련 정부예산도 많다.
“나는 정부돈 ㅉ받는 것을 싫어한다. 2002년 문화관광부 유진룡 문화산업국장(후에 장관이 됨)이 아이디어를 주면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하더라. 나는 ‘자생력이 있다, 다른 사람 주라’고 대답하니 껄껄 웃더라. 나중에 우리 직원 모두 밥을 사겠다고 해 밥은 얻어먹었다.”
2007년 전국 시사잡지 편집장들이 모여 ‘시사잡지의 미래’를 놓고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편집장 대부분은 ‘심층성을 강화한다’, ‘미래 전망이 밝다’ 등 장밋빛 전망을 했다. 그러나 기자는 심층성은 포털을 따라갈 수 없어 시사잡지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앞으로 잡지는 ‘동호회 잡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같은 취미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돌려보는 시대, 심지어 뉴스도 같은 취향끼리 공유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요즘 뉴스 소비가 그렇고, 페이스북·카카오톡 모두 ‘동호회 성격’이 바탕이 되고 있다.
기자의 이 말에 한 소장도 공감했다. 그는 잡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동호회)와 큐레이션(소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도서관저널>이라는 잡지도 같이 낸다. 독자는 독서지도 교사들로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매체다. 이 잡지는 해마다 정기구독이 20%씩 늘어나고 광고도 저절로 들어온다고 한다.
출판계에서 ‘어렵다’, ‘죽겠다’는 소리가 나온 것은 20~30년 넘었다. 실제 대형 책 도매상이 부도로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직원의 월급을 늦춰본 적이 없고, 원고료를 정확히 주기로 유명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월급날을 앞두고 주변에 돈 빌리는 것이 일과였다”면서 “선뜻 빌려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유지됐다”고 말했다.
왜 출판계가 어려워졌을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물론 버스나 전철을 타보면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읽고 있다. 그럼 책의 유통구조가 문제인가. 지금도 출판계는 정가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출판시장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다.
기자는 그 원인은 ‘기초 부실’이라고 본다. 영화는 물론 방송(드라마)·만화·게임, 심지어 유튜브도 기초는 작가의 글이다. 그러나 작가가 오랜 노력 끝에 원고를 마무리하더라도 대부분 인세 200만~300만원 받고 끝난다. 출판사들은 하드커버·컬러 등 책의 외형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작가 몫의 서너 배가 유통비용으로 들어간다. 작가가 먹고살기 어려우니 책을 쓰지 않고, 결국 좋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한 소장도 출판계의 이런 풍토에 공감했다. 그는 “출판사들은 (돈이) 되는 작가들에게만 매달리고, 무명작가를 발굴하거나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획회의> 500호 표지.
한 소장은 보통과 다른 방식으로 출판사를 운영한다. 먼저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부모와 첫 직장인 <창작과비평>에서 배운 ‘정신’ 혹은 ‘방법’이라고 했다. 부친은 가뭄에 말라버린 천수답에 계속 물을 퍼 나르게 했다. 그는 “왜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무모한 일을 시켰을까 생각했다”면서 “그것으로 나는 농사를 지을 때 둑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필자 6000명이 출판사 운영의 초석
그는 출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물을 고이게 하려면 먼저 토대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는 신예작가를 발굴하거나 작가가 없으면 아예 글 쓰는 방법을 가르쳐 키운다. <기획회의> 필자가 무려 6000명이다. 이중에는 무명작가도 적지 않다. 또 <창작과비평>의 특징은 뛰어난 평론가들이 담론을 만들어 문학작품을 평론하고, 문학시장을 키워나가는 방법으로 성장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영세한 출판사는 쉽지 않다. 그는 올 4월 5000만원을 투자해 <판타지 유니버스 창작 가이드>를 냈다. 요즘 게임·만화·영화 속 판타지 세계를 창작하기 위한 작법서다.
-최근 남들이 어렵다는 단행본 출판을 과거보다 훨씬 본격·공격적으로 하는 느낌을 받는다. 무슨 ‘영감’을 받았는가.
“2016년 9월 9일 강릉에서 술 마시고 바닷가에 앉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웃음) 그때 내가 죽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했다. 제일 먼저 나에게 돈을 빌려준 후배들 생각이 나더라. 그들에게 피해가 돼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상업출판은 안 했는데, ‘자립하는 출판을 하자’고 결심했다.”
-책 도매상이 부도나 큰 피해를 보면서도 거액을 들여 서브컬처(판타지 영화·게임·만화 등 정통문화에 상대되는 문화 개념) 작법 책을 낸 이유가 뭔가.
“나는 이 서브컬처가 앞으로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서브컬처 전문 출판사 ‘요다’와 가벼운 과자라는 의미인 스낵컬처 ‘플로베르’ 출판사 2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두 개 출판사를 양 날개로 수익이 나는 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만든 <판타지 유니버스 창작 가이드>가 이 분야 작가들에게 필독서다. 이를 통해 이 분야를 알게 됐고, 작가들이 쇄도하고 있다.”
-판타지 창작 가이드를 읽고 머리로 소설을 쓰는 것은 옛날 무협지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깊은 체험과 고뇌, 사색과 노력 끝에 쓰여지는 것이 문학이고, 저술 아닐까. 물론 가볍게 읽는 것이 세태이긴 하지만 그런 독자가 장기적으로 유지될까.
“소설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웹소설로 월 10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이 수백 명이 넘는다. 이제 세계관이 달라졌고 인문학의 본질도 달라졌다. 이들은 이제 비(非)주류가 아닌, ‘비(be)주류’를 선언하고, 문학의 한 흐름이 됐다.”
한 소장은 2017년 한 무명작가를 찾아 ‘대박’을 냈다. 소설 <회색 인간>을 쓴 김동식이다. 중학교 1학년 중퇴로 10년 동안 공장노동자로 일했던 그는 2010년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다 재미있어 직접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 쓰는 법은 인터넷에서 배웠다. 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였다”면서 “그 자리에서 세 권짜리 책을 내기로 하고 계약금을 줬다”고 말했다. 책 한번 내본 적 없는 무명작가에게 과감히 투자한 것이다.

11월 21일 <기획회의> 500호 발간 기념식에서 한기호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 소장은 “내 예상은 맞아떨어져 <회색 인간>은 지금까지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말했다. 특히 이 서브컬처 소설 분야는 인세를 제대로 주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김 작가는 인세로만 2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고, 이 소문으로 서브컬처 작가들이 작품을 들고 출판사로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한 소장은 올 12월 또 다른 출판사 ‘백화만(慢)발’을 설립한다. 중·장년 여성을 위한 그림책 출판사다. 모두 ‘종이매체’의 종언을 말하는 요즘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창비 영업부 입사로 출판사 첫발
한 소장은 1958년 경북 경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학을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고, 77년 공주사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80년 대학 신문사 편집장 때 광주항쟁을 보도하면서 제적·구속됐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그는 83년 ‘창작과비평’(창비)사 영업부에 입사했다. 그는 새벽 서울역에서 책을 지방에 보내고 지방을 돌며 총판과 서점을 상대하는 영업사원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단순히 책을 파는 영업사원이 아니었다. 혼자 여관방에서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를 독파하고 교정지를 얻어 읽어 앞으로 출간될 책 내용을 미리 파악했다. 이런 영업 감각으로 그는 책이 나오면 얼마나 팔릴 것인지를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이 그의 영업 능력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1998년 창비를 나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하고, 99년 창간한 것이 바로 출판전문지 <송인소식>(후에 <기획회의>로 변경)이다. <기획회의>는 출판사·출판인을 위한 정보·평론서로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에는 <학교도서관저널>도 창간했다. 한 소장은 출판비평가·독서평론가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는 활동을 하면서 단행본 출판도 같이했다. 그러나 소위 ‘돈이 되는’ 상업출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돈이 궁했지만 대의에 어긋나는 출판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는 2016년부터 이른바 서브컬처 분야에서 출판의 승부를 걸고 있다. 이제 3년 정도됐지만 성과도 나고 자신감도 커졌다. 그는 인생의 ‘경쟁자’로 창비 백낙청 선생을 꼽는다. 사실 그는 창비와 ‘유쾌하지 않게’ 결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백낙청 선생이 ‘너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고 나를 인정해주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는 심경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경쟁이라기보다 백낙청 선생의 당시 결정이 잘못이었다는 점을 확인받고 싶은 일종의 ‘오기’일 수 있다.
물론 많이 팔리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물었다. 그는 거침없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품은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판인으로 역할이 끝나면 인생의 제3막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6개월간 책 100권을 읽고, 스스로 인생을 찾아갈 수 있는 독서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