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광고, 인지적 취약점 파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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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합리적인가? 단연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제한적 합리성’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감정에 쉽게 동요되고 대세에 슬며시 편승한다.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아무리 합리적인 정보라도 수용을 꺼린다. 그렇다고 합리성을 온전히 내던지진 않는다. 토론하고 숙고하며 철저하게 따져본다. 인간은 원래부터 그런 존재였을지 모른다.

선거 기간 동안 정치광고를 중단하기로 한 구글./AP연합뉴스

선거 기간 동안 정치광고를 중단하기로 한 구글./AP연합뉴스

제한적 합리성은 기술의 정밀함과 교묘함에 제법 취약하다.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인 인간의 인지적 약점을 기술은 마이크로 타깃팅으로 유혹한다. 어느 시점에서 분노하는지, 어떤 계기에서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집단에 휩쓸리는지 기술은 이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활동 이력을 꾸준하게 추적하면, 특정 인간 유형의 취약점 패턴은 쉽게 간파해낼 수 있다.

기술을 활용한 정치광고는 그래서 위험하다. 인간의 인지적 취약점을 정확하게 파고들기에 그렇다. 마이크로 타깃팅이 되기 전과 후의 정치광고는 위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페이스북의 심리 실험에서 유추해낼 수 있듯, 타깃팅의 인지조정 효과는 꽤 명확하다. 메시지의 배열을 달리하면 기분이 바뀌고, 감정의 동조 효과도 뚜렷해진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광고가 이 취약점을 건드린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구글과 트위터는 선거기간 동안 정치광고를 중단하기로 했다. 아직 페이스북이 남아 있지만, 일정 수준의 정책 조정은 수용할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난제가 있다. 시쳇말로 ‘정치광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된 정의의 도출이다. 정치인의 광고만을 제한한다고 정치광고의 위험성이 제거되진 않는다. 편향된 언론사의 왜곡된 정치기사가 타깃 광고를 타고 플랫폼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다면? 이를 막을 도리가 현재로선 없다. 탈원전이 정치화한 마당에 환경단체의 광고조차 선거기간이 되면 정치광고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지하면 표현의 자유로, 방치하면 허위정보 확산으로 논란의 범위는 곧장 확대된다.

영국 총선, 미국 대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년 4월 총선 경쟁이 시작된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입말’은 거칠어지고 ‘손말’은 둔탁해지고 있다. 그것이 인지편향을 공략하는 교묘한 술수라는 걸 학습한 이상, 정치광고의 형태는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인지기능의 취약점만을 노리는 게 아니라 정의의 빈틈까지 넘볼 것이다. 어쩌면 탈진실 정치광고 시대의 괴력을 우리는 내년에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보다, 자본주의를 위한 기술이 우선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를 위한 기술이 민주주의를 위협해도 저항의 움직임은 미미하기만 하다. 기술 지식과 경험의 비대칭성은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것이 전환의 비용이라면 감내하겠지만, 파국의 전조라면 용납될 수 없는 그 무엇이 된다. 인간의 합리성에 기댄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이 쳇바퀴 안을 맴맴 돌 동안 제한적 합리성에 올라탄 자본주의를 위한 기술은 인간을 알고리즘의 형장에 가둬놓고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정치광고는 그렇게 통제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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