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미적으로 아름답다. 또한 무척 비싸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명품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기호의 역할을 한다.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명품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그냥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그 자체로 귀했다.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들도 귀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신분제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시의 욕망은 귀족들의 물건과 그것을 사용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오히려 더 집중됐다. 이런 현상은 왜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명품의 본고장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다. 즉 수공업과 상업으로 자수성가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력화한 곳이다. 이들은 성공을 통해 축적한 막대한 자본으로 도시의 자치권을 영주로부터 얻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도시 공화국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피렌체다. 피렌체를 통치하던 메디치 가문은 부와 명예,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다. 이 가문과 거래하던 장인들의 입지도 함께 강화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물건을 잘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뛰어난 예술가로 승격된 것이다. 이런 전통을 기반으로 구찌와 페라가모와 같은 장인 가문의 이름은 바로 명품 브랜드가 되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좀 다른 명품 발달의 역사를 지녔다. 프랑스혁명으로 새롭게 사회의 주류로 편입된 부르주아들은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었다. 이들은 아주 빠르게 권력을 얻었지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딱 하나의 욕망이 있었다. 역사와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풍겨지는 그 무엇이 간절히도 고팠다. 귀족보다 못할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진짜 귀족이 아닌 ‘귀족 코스프레’를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들은 예전 귀족들이 사용했던 물건과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다. 혁명 이전의 상류층만 향유하던 문화가 이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시도가 되었다. 물론 돈이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프랑스에서는 에르메스, 샤넬, 디오르,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배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시장을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시킨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미국과 중국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정치·경제적으로 강국이라는 점과 함께 신분제가 없거나 사라진 곳이다. 그러고보니 미국과 중국은 과거 상업으로 성공한 이탈리아와 혁명의 나라 프랑스와 아주 많이 닮았다. 메디치 가문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신흥부자들도 자신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전략을 채택했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대신에 이미 존재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명품들을 통해 자신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뒤를 이어 강대국 반열에 들어선 중국인들도 명품 쇼핑에 가세했다.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독일에서는 인기게임 LOL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이 한창이다. 특이한 점은 롤드컵 후원사에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롤드컵 우승컵을 루이비통 커버에 담아서 증정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백화점 대신 게임에 ‘입점’을 하는 명품 시대가 온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신흥 주류세력으로 게이머가 이미 부상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증인 셈이다. 적어도 명품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