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와 아이가 게임 때문에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은 게임이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서 역사 이래로 반복되는 부모·자녀 간 갈등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IT칼럼]게임 이용장애, 국가가 나서야 할까](https://img.khan.co.kr/newsmaker/1342/1342_49.jpg)
우리 주변에 흔한 ‘다이하이드로젠 모노옥사이드(DHMO)’라는 물질이 있다. 이 물질은 잘못 다루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대표적 예는 이렇다. 부식성이 강해 철이나 목재 같은 많은 물질을 부식시킨다. 기체 상태의 이 물질에 노출되면 화상을 입을 수 있고, 고체 상태의 이 물질에 노출돼도 피부손상을 입을 수 있다. 액체 상태에 장시간 피부가 노출될 경우 피부박리 등 영구적인 피부손상을 조심해야 한다. 허용량 이상을 섭취하면 두통·경련·의식불명 증세가 나타나고, 치사량 이상을 먹으면 사망한다. 기관지에 흡수되면 강한 기침과 인후통을 유발하고, 다량 흡수되면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사망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물질은 대부분 식품에 다량 함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이 물질에 대해 아무런 제한 없이 접촉할 수 있다. 이 물질은 국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할까?
이 물질은 일상에서 ‘물’이라고 부른다. 쇠를 녹슬게 만들고, 나무를 썩게 만든다. 수증기에 화상을 입을 수도, 얼음에 동상을 입을 수도 있다. 여름에 갈증이 심하다고 너무 많이 마시면 체내 무기염류 농도가 낮아서 사망할 수도 있다. 익사사고와 같은 끔찍한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이게 다 물과 관련된 위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안전한 물 음용법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또한 물병에 위험물에 대한 취급 주의사항도 적지 않는다. 그래도 모두 잘 살아왔다. 국가가 나서지 않더라도 말이다. 만일 국가가 나서서 물 관리 자격증, 그리고 성별이나 체중에 맞는 물 음용량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아마도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으리라.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도 잘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놀이다. 그리고 놀이는 고등생물들의 본능이다. 생활환경이 스마트기기로 바뀌면서 놀이도 디지털화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디지털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 넘었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라인게임이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된 지 20년이 넘었다. 만일 디지털화된 놀이가 치명적으로 위험한 병리현상을 일으키고, 누군가의 삶을 황폐화시켰다면 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세상은 전쟁과 질병이 줄어들고, 청년들의 지능과 지식, 그리고 기술의 수준은 이전과 비교불가할 만큼 향상되어가고 있다.
최근 게임 이용장애와 관련된 정책토론회에서 한 어머니가 이런 질문을 하셨다. 중·고생 남학생을 키우는 어머니이셨는데, 아이들과 게임 때문에 갈등이 심하다고 말씀하시며, 국가와 게임사는 이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은 게임이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서 역사 이래로 반복되는 부모·자녀 간 갈등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과연 유튜브나 페이스북으로 밤을 새워 지각을 했다면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부나 성적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국가가 나서야 할까?
유독 게임과 관련된 이슈만 제기되면 우리 사회는 갑자기 ‘어린 백성’이 되어버린다. 그 어린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1400년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무언가 심각한 시대와 의식의 부조화를 절감하게 된다. 게임 이용장애를 둘러싼 논쟁은 이런 부조화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로 보인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을 점검해야 할 때다. 시대에 맞게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