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과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은 겹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야기는 기묘하게 이어져 있다. 영화의 주무대는 폐쇄된 지방의 단관극장이다.
제목 암전
주연 서예지, 진선규
감독 김진원
개봉 2019년 8월 15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6분

㈜더콘텐츠온
좀비는 현대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마치 진짜로 존재한다는 듯이. 하지만 좀비는 실재하지 않는다. 상상력의 산물이다. 리처드 매드슨과 조지 로메로가 창조한 현대 좀비물도 그렇고, 오리지널인 부두교의 좀비조차 마찬가지다. 방사능 때문에 시체가 되살아난 적도, 죽어 땅 속에 묻힌 사람을 살려내는 약이나 비술 따위 역시 발명된 적이 없다.
‘스너프(snuff)’도 그렇다. 많은 영화와 소설이 현대 ‘도시전설’에 해당하는 콘텐츠가 실제로 음습하지만 어딘가 은밀한 세계에서 다량으로 제작되고 유통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소문뿐이다. 전쟁기록이나 사고 영상,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제작된 살인 영상들을 제외한다면 유흥을 목적으로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진짜 스너프’ 영상은 아직까지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고 말한다.(박스기사 참조)
복원된 영상이 드러내는 사건의 전말
영화 <암전>은 영화제에 출품되었다는 한 기괴한 작품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오프닝. 극장의 관객 속에서 졸고 있는 한 여성. 깨어나 보니 극장에는 아무도 없다.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문을 열어보려고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저쪽 구석 어둠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귀신의 엄습. 깨어보니 꿈이다. 열심히 꿈에서 본 것을 적어 보지만 신통치 않다.
그녀는 독립영화 감독 미정이다. 벌써 몇 년째 제대로 된 작품을 못내고 있다. 그러다 듣게 되는 것이 <암전>이라는 영화에 대한 소문이다. 대전의 한 대학 연극영화과에서 내려오는 구전 공포담인데, 졸업작품으로 만든 그 영화는 끝까지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 영화 상영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도 있고 해서 결국 상영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찍은 영화’라는 소문도 있는 모양이다. 소문에 귀가 번쩍한 미정은 영화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영화제 라이브러리에서 폐기 직전의 영상을 입수한 미정은 커뮤니티에 그 영화 장면을 올려 관계된 사람을 수배한다. 그녀를 찾아온 영화의 감독. 반(半)폐인으로 살고 있다. 남자가 살고 있는 폐가에 잠입한 미정은 <암전>이 보관되어 있는 낡은 노트북 PC를 훔쳐 나오는 데 성공한다. 포맷된 노트북 하드를 물려 복구 프로그램을 돌리자 영상은 하나씩 하나씩 복원된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
영화의 제목과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이 겹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야기는 기묘하게 이어져 있다. 영화의 주무대는 폐쇄된 지방의 단관극장이다. 순미라는 여배우는 이 극장에서 불 타 죽었고, 지박령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를 찍으러 왔다가 사람들이 실제 죽는 장면이 찍혀 있다. 그걸 알면서 감독은 선배 후배들이 죽는 장면을 필름에 담는다. 즉, 스너프 필름이었다. 그게 귀신들린, 혹은 귀신이 찍은 영화로 말만 남겨진 이유다.
극장을 무대로 하는 공포영화 하면 떠오르는 람베르토 바바의 영화 <데몬스>(1985) 같은 영화들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에서 떠오르는 것은 <주온> 시리즈의 가야코와 토시오가 살던 2층집이다. 비극적인 사건 후 지박령이 되어버린 가야코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죽여 지박령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시공간마저 뒤틀려 버려 선후관계가 꼬여버린다. 사태를 종식시키려 휘발유통을 들고 그 집에 간 형사는 10여년 뒤 다시 똑같이 그 집에 발이 묶여버린 자신의 딸을 보게 된다. 10여년 전 영화를 찍으러간 사람들의 최후가 미정의 눈앞에 재생되고, 그녀는 이 끔찍한 사건에 마치 배역을 할당받은 배우처럼 노출이 된다.
뒤틀려버린 극장 안의 시공간
스마트폰의 시대, 사람들은 강박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기록으로 남긴다. 미정도 그렇다. 꿈속에서 그녀가 귀신을 만났을 때 한 행위는 스마트폰으로 증거사진을 남기려 한다. 영화도 이제는 디지털로 제작돼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끊임없이 복제·재생된다. 셀룰로이드 필름과 아날로그 시대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주온>과 함께 이른바 J호러의 쌍두마차쯤으로 인식되는 <링> 시리즈의 나카타 히데오가 만든 <극장령>(2015)이나 <여우령>(1996) 같은 영화들을 보면 왜 연예계 내지는 영화제작 현장에 괴담이 많은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필름 한 조각이라도 낭비하면 안 되는 아날로그 시대 영화판의 엄격한 질서-다른 말로 하면 감독과 연출·배우 ‘위계’에서 생긴 권력관계가 공포담의 뿌리다. 학교나 군대가 괴담의 주요 무대가 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그렇다면 <암전>의 경우는? 제대로 된 무서운 영화를 찍고 싶다는 독립영화 감독의 갈망? 왜 나는 불에 타 죽었다는 순미의 사연이 깊고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그건 내가 영화가 주타깃으로 삼고 있는 10대와 20대들의 문화코드를 더 이상 따라잡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토비 후퍼 감독의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포스터. / 경향자료
앞서 스너프는 실제로 아직까지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도시전설에 불과하다고 썼는데, 그건 2006년까지의 이야기다. 그 뒤 세상은 달라졌다. 중동 일대를 점령한 이슬람국가(IS)는 알카에다와 차원이 다른 참수영상들을 만들어낸다. 영화적 기법을 동원해 참수당하는 순간을 찍은 고화질 영상을 만들어냈다. 탱크로 포로를 깔아뭉개거나, 동성애자들을 건물에서 밀어 추락사를 시킨다든가, 아니면 크레인을 동원해 철망에 가둔 사람들을 익사시키는 연출 영상들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 멕시코 마약조직이 만들어 유포한 협박영상도 뒤지지 않았다. 전기톱 참수는 더 이상 토비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같은 공포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영상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2006년 이후엔 스너프가 더 이상 도시전설이 아니게 됐다고 한 건 이들 프로파간다 영상 때문만은 아니다. 2007년 전세계가 경악한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매니악 사건이다. 이들은 실제 판매를 목적으로 스너프 영상을 찍었다. 2007년 7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48세의 남성을 3명의 10대 후반 청소년이 망치와 드라이버 등으로 무참히 살해했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다. 21명을 살해한 이들은 붙잡힐 때까지 12개의 동영상과 수백 장의 사진을 남겼다. 범인 중 2명은 아직 복역 중이고, 한 사람은 만기출소했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