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에서 인공지능(AI)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 동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다. 만일 내가 그 영상이 인공지능 앵커의 뉴스라는 정보를 알지 못하고 들었다면 그냥 ‘뉴스구나’라고 넘어갈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AI 기술을 실감하던 중 이미 우리 일상 속에 AI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요즘 웬만한 집에 한 대씩 있는 AI 스피커는 노래도 찾아주고, 날씨도 알려준다. 그리고 심심하면 끝말잇기도 곧잘 한다. 출·퇴근길에 자동차 안에도, 늘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폰 속에도 AI는 언제나 대기 중이다. 램프 속에서 늘 명령을 기다리는 지니처럼 말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기술이 진보하여 AI가 극도로 발달하게 된다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똑똑(smart)’해진다면 세상은 정말 평화롭고 행복해질까? 흔쾌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심하게 망쳐놓았는지는 AI의 도움 없이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회계부정, 사법농단, 권력비리라 불리는 일들은 똑똑하지 않으면 저지를 수 없는 대표적인 악행들이다. 이런 이들이 첨단의 AI 기술로 무장한다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이 악행인 줄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지능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지능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지혜다. 지혜는 잘 잊어버리고, 기억하는 것마저도 금방 떠올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현명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원천이다. 지능이 보편적인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지혜는 사람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능이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지혜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지능이 더 많은 정보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지혜는 핵심적인 것들 이외의 것을 제거하는 단순화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능이 높은 사람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에 비해 지혜가 많은 사람은 늘 환영을 받는 편이다.
지혜는 크게 지식, 통찰, 분별력 등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런 요소 중 지식은 지능과 유사한 속성이다. 하지만 통찰과 분별력은 지능과 지혜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지혜는 지능을 포괄하는 더 상위의 개념이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자폐증을 앓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폐증을 보이는 사람의 문제행동을 약화시키기 위한 기술이나 의학적 지식들을 모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사람과 어울리기 어려운 이유는 사람보다 사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통찰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통찰의 결과로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자연을 다루는 일을 하도록 분별력을 발휘한다. 탬플 그랜딘이라는 동물 사육의 권위자이자 고기능 자폐증 환자이기도 한 그는 지혜의 생생한 사례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참고로 그의 일생은 2010년 영화화되기도 했다. 기술이 인간의 행복과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면 이제 방향은 AI가 아닌 ‘인공지혜(Artificial Wisdom)’로 기술의 질적 도약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저기서 AI들이 쏟아내는 지식들이 쓰레기로 썩기 전에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