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0에 어떻게 살까는 40대에 정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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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은 돼야 성숙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은 다 떠났지만 내 동년배인 안병욱 교수, 김태길 교수, 김수환 추기경도 60~75세까지 가장 창의적이고 찬란한 시기를 보냈어요. 좋은 책은 모두 그 시기에 썼지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 이준헌 기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 이준헌 기자

최근 부산의 한 교회에서 중년남성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4주에 걸쳐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그 프로그램을 보고 감회에 젖었다. 왜냐하면 필자의 앞주 토요일에 강의하실 분이 바로 100세의 노철학자이신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이셨기 때문이다. 100수를 누리시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부산까지 오셔서 강의까지 하신다니!

사실 김형석 교수님에 대해 나는 특별한 마음이 있다. 바로 필자의 선친(先親)과 대학교 동창이시기 때문이다. 필자의 선친은 일제시대에 도쿄에 있는 상지(上智)대학교에서 수학하셨다. 선친의 말씀에 의하면 그 당시 상지대학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세 분 계셨다. 한 분은 신학과에 다니신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시고, 또 한 분이 바로 철학과에 다니신 김형석 교수님이셨다. 그리고 필자의 선친(고 한승호 목사님)은 당시 경제학부에서 수학하셨다.

100세 노철학자의 2시간 강연

필자의 선친께서는 졸업을 얼마 앞두고 학도병으로 중국으로 끌려가서 전쟁을 치렀다.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경험하시고는 경제보다는 삶의 의미를 먼저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전쟁 후 고향 평양으로 돌아오셔서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셨다. 그 후 1·4후퇴 때 피난을 나오셔서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하셨고, 1953년 서울에 오셔서 다시 같은 이름의 교회를 개척해 사역을 하셨다. 55년 미국으로 유학 가 상담을 공부하셨다.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 강의하시며 기독교 계통에서 상담을 널리 보급하셨다.

필자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김형석 교수님과 숭실대학교에 계시던 고(故) 안병욱 교수님이 인문학적 소양에 굶주린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한 어려운 철학적 주제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주시며 큰 영향을 끼치고 계셨다. 선친께선 라디오나 매체에 김형석 교수님이 나오시기만 하면 자신과 대학교 동창이라고 말씀하시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안병욱 교수님은 와세다대학교에서 공부하셨지만 다른 인연으로 선친과 막역한 친구가 되셨다. 어렸을 때부터 필자의 집에는 당시에 큰 영향을 끼치고 계시던 두 분 철학자가 쓰신 책이 여러 권 있었다.

김형석 교수님의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안병욱 교수님의 <사색인의 향연(饗宴> <인생은 예술처럼> 등은 지금도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뛸 정도로 좋아한 책들이었다. 지금도 그 책의 몇 구절은 외우고 있을 정도로 한동안 옆에 끼고 살았다. 아마 정확히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필자의 현재의 삶과 인생관에는 두 분 철학자의 사상과 교훈이 스며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인생의 큰 스승이자 선친의 지기(知己)이신 노철학자와 함께 같은 프로그램에서 강의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자 큰 기쁨이었다.

“몇 살부터 노년이에요”

김해국제공항에서 강의장까지 가는 동안에 그 강의를 들은 분에게 김형석 교수님의 강연이 어땠느냐고 물어보니 “너무나 좋았다”고 감탄을 하면서 함께 강의를 들은 분들이 다 같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연로하셔서 서서 강의를 하지는 않고 앉아서 강의를 하셨지만 2시간 가까이 맑고 뚜렷한 음성으로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신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고 하였다.

100세가 돼서도 2시간 가량 강의를 하신다는 것은 강의의 내용을 차치하고 그 자체가 정말로 존경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분에게 강의의 내용 자체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앞으로 100세 시대를 살아갈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도 100세까지 정정하게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어른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 힘든 철학을 쉽게 강연하실 수 있는 그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의 큰 기쁨이고 많은 분들의 귀감이 된다.

중·노년기에 대해 강의할 때마다 많이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는 “몇 살 때부터 중년(노년)이에요”라는 질문이다. 그와 유사한 질문에 김형석 교수님은 한 언론매체와의 대담에서 “60은 돼야 성숙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60에 어떻게 살까’는 40대에 정해야 해요. 지금은 다 떠났지만 내 동년배인 안병욱 교수, 김태길 교수, 김수환 추기경도 60~75세까지 가장 창의적이고 찬란한 시기를 보냈어요. 좋은 책은 모두 그 시기에 썼지요”라고 말씀하셨다. 노철학자께서 60∼70대가 제일 좋았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고 잔잔한 충격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노년이라고 생각하는 그 나이가 제일 좋았다니? 과연 그럴까? 만약 그분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일반적으로 노년을 무용지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치부하는 세간의 편견은 이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100세를 사시고, 또 철학을 공부해 오신 분이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믿어도 될 것이다. 특히 100세가 되어서도 직접 그 말씀대로 살고 계시는 분의 말씀이라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60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눈만 깜빡이며 자리에 누운 부인을, 23년 동안 차에 태워 돌아다니며 세상을 보여주고 맛난 음식을 입에 넣어주셨다는 노철학자는 상처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인의 손때가 묻은 낡은 집에서 홀로 지내고 계신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고독이지요. 90이 넘으면 친구가 사라집니다. 아내도 가버리지요. 세상이 텅 빈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재혼을 했을텐데…”라고 웃으면서 솔직하게 말씀하신다.

노년의 사랑에 대해 “젊어서는 연정이고, 애들 키우면서는 애정이고, 75~80쯤 되면 인간애로 변해요. 모든 여성을 대할 때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지요. 20년 아내를 간병했더니, 주변 남자들이 ‘김 선생 때문에 우리가 부담 느껴요’ 그래요. 그러면 직면해 보세요(웃음). 23년이 4~5년처럼 후딱 갑니다. 늙어서 인간애로 가지 못하면, 탑골공원의 노인들처럼 ‘노욕’에 괴로울 뿐이지요”라고 충고를 해주신다.

멀리서 몇 번 바라보기만 했지 한 번도 가까이 가서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필자는 “지금도 지팡이 없이 걷기 위해, 또 강의 준비하기 위해 남모르게 매일매일 노력하신다”는 노철학자에게 마음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주셔서 고맙고, 또 정정하게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고 계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오래오래 살아계셔서 그 길을 따라가는 인생의 후배들에게 지금처럼 큰 귀감이 되어주십시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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