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생필품인가, 사치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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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먹는 곡식, 물, 공기와 같이 생존과 기초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비용이 저렴하거나 거의 공짜에 가까워서 누구나 이용가능하다. 만일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여 부담스러워지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이때는 이를 대체할 저렴한 것을 선호하게 된다. 밥이 비싸면 라면을 먹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싸면 잘 팔리고, 비싸면 안 팔리는 고전경제학의 시장경제원리가 작동하는 모델이다. 만일 누군가가 생필품 가격을 고의로 올리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매우 중대한 범죄가 된다. 사회의 공적(公敵)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생필품의 가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정기적으로 물가조사라는 것을 통해 감시를 하게 된다.

게임 박람회 E3에서 북미 이용자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경향DB

게임 박람회 E3에서 북미 이용자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경향DB

그런데 고전경제학 모델로 설명되지 않는 시장이 있다. 바로 사치품 시장이다. 사치품이란 생존과 무관한 상품들이다. 사치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생존에 필요한 것을 모두 충족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때 사치품은 물건의 고유 용도에 의해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징성에 의해서 판매가가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품들이다. 이런 명품들은 싸면 안 팔린다. 누구나 사서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액세서리, 자동차는 내가 특별함을 알려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아주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없는 가격의 물건이 더 인기를 끌게 된다. 사회적인 상징성이 오히려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현상을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라고 부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과시하는 비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사치품은 가격이 비싸도 저항이 약하다. 비싸게 판다고 하여 시기를 받을지언정 법으로 처벌하거나 규제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게임은 과연 생필품에 가까울까, 사치품에 가까울까? 1980~1990년대 게임은 사치품에 가까웠다. 사실 게임이 사치품이 아니라 게임기나 컴퓨터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사회·경제적 지위를 암시했다. 그러다가 초고속인터넷과 컴퓨터가 집집마다 보급되던 1990년대 말이 되면서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생필품의 개념이 되었다. 국민게임의 등장은 이제 게임이 생필품으로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게임의 이미지는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고급문화와 거리가 먼 저급문화의 인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사실 요즘 시끄러운 게임중독 같은 이슈는 게임의 대중화에 따른 메아리라고 생각된다. 매일 수십 만원짜리 오페라에 열광하며 즐기는 사람에게 오페라 중독이라며 치료받으라고 하지 않는 것은 딱 반대현상일 것이다.

내가 장황하게 이런 말을 하게 된 계기는 ‘대리게임 처벌법’이 발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게임은 내가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자 하는 행위다. 당연히 남에게 시킬 이유가 없다. 그것도 돈을 주어가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대리게임 처벌법’이 나온 것을 보면,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번쩍이는 높은 티어(등급)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대리게임을 하는 이들에게 패하여 티어가 낮아진 게이머들의 분노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리라. 분노한 이들에게 게임은 누구나 공평해야 하는 생필품으로 인식되는 반면, 돈을 주고서라도 휘황찬란한 티어 딱지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사치품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제 게임도 시장을 구분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일까? 생필품 게임과 사치품 게임으로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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