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곤 했던 20세기의 소년소녀만화잡지에 따르자면 우리는 지금쯤 알약 한두 알을 끼니로 먹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분홍색 알뜰 소시지를 즐겨 먹던 그때보다도 수입산 냉동육일지언정 고기를 훨씬 더 많이 먹고 있다.

실험실에서 배양육으로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 모습/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학 홈페이지
우리는 장이 길고 송곳니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육식이 맞지 않는다는 채식주의자의 주장은 알고 있지만, 잘 익은 고기 한 점이 입 안에서 녹아 버리는 미각이란 하루 이틀에 진화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어느새 고기를 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77억 인구가 고기를 탐해도 되는지 아닌지다. 우선 지구가 이 규모의 육식을 위해 설계되어 있지 않다. 유엔 기후 변동에 관한 범정부 패널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육식을 대량으로 줄일 것을 대책으로 권고했다. 온실가스의 18%를 가축이 뿜어낸다.
게다가 귀중한 수자원이 필연적으로 낭비된다. 가축이 먹는 물보다도 가축에게 먹이기 위한 사료를 키우는 데 드는 물 때문이다. 또 그렇게 키운 곡물이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투입되어야 하므로 식량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켜야 한다. 그런데 농지 등 여건이 만만치 않다. 고기를 탐하는 마음 탓에 기후변화는 물론 물과 식량 위기가 닥치게 생겼다.
논리보다 정서적인 면이 다가오기도 한다. 절대채식주의, 즉 ‘비건’의 주된 동기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함이다. 그렇다면 소가 행복하도록 방목하면 괜찮을까. 소고기를 애호하는 남미에서는 목초지 개발로 열대림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잃게 되는 것은 종의 다양성. 한 종이 행복하고자 다른 종들을 멸종시키는 꼴이다. 이래저래 식육 자체는 사면초가. 지속 가능한 풍요는 요원하다.
그래서 이 과제 해결의 움직임으로 지금 뜨겁다.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움직임이 있다. 하나는 가축의 세포를 배양해 식육으로 만드는 배양육. 도쿄대와 닛신식품의 성과가 좋은데 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스테이크의 줄기조직을 만든다. 하지만 아직 연구실 안에서다.
이보다 더 뜨거운 것은 이미 상용화된 식물 기반 고기 사업이다. 종래에도 두부 같은 소시지 정도야 슈퍼에서 팔았지만, 이번에는 본격적이다. ‘비욘드 미트’와 ‘임파서블 푸드’가 대표적 스타트업들로 이미 버거킹 등 시판 체인과 콜라보 중이다.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여기에 전 맥도널드 CEO까지 투자자도 화제다.
이들은 콩과 감자, 코코넛, 비트 등에서 물질을 추출해 잘 익은 고기가 입안에서 벌이는 화학적 작용을 시뮬레이션한다. 피맛과 육즙을 흉내 내기 위해 분자 수준에서 치밀하게 컴파일하고 테스트하는 노력이 마치 코딩과 같다. 5월에 상장한 비욘드 미트는 주가가 폭등해 1조원짜리 유니콘이 되어버렸다.
마치 소프트웨어가 클라우드에 모이듯, 이들 푸드 테크는 데이터센터보다 거대한 공장을 꿈꾼다. MIT에서는 식물 공장을 만들고 있다. 어떤 조명을 얼마나 주면 어떤 맛이 나는지 분석화학 기술로 수치화하여 알고리즘으로 학습시킨다.
이제 식물 패티가 찍혀 나오고, 스테이크까지 배양되는 아파트형 고기 공장마저 만들어지면 토지 이용도 수자원 이용도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공장식 축산은 잔인하지만, 식물과 세포의 공장은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적어도 그곳에는 생산만 있을 뿐 죽음이 없다. 그 편안함을 위해 인류는 어느새 고기마저 코딩하고 클라우드화하려 하고 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