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외동아들이 독일에서 보내온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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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에 아들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배달을 시켰더라고요. 엄마가 평생 김치 담그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편하게 김치를 먹어보래요. 어찌나 맛있고 감격스럽던지….”

“아들이 글쎄 독일에서 김치를 보내왔어요.” 현희씨가 한껏 들떠서 아들 자랑을 한다. 모처럼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니 아들이 어떻게 독일에서 김치를 보내와요? 아드님이 김치를 담갔다고요?” 사람은 자기 수준으로밖에 생각을 못하는지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48)외동아들이 독일에서 보내온 김치

“어버이날에 아들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배달을 시켰더라고요. 엄마가 평생 김치 담그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편하게 김치를 먹어보래요. 맛있다며 여러 종류의 김치를 집으로 떡하니 배달시켰더라구요. 어찌나 맛있고 감격스럽던지…. 속 깊은 아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엄마를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환하게 웃는다. 우리 일행은 모두 자신의 아들이 보내준 김치를 받은 듯 다 감격했다. ‘아들이 보내준 김치라….’ 묘한 여운이 남았다.

몇 달 전까지도 현희씨는 독일에 체류 중인 외동아들을 걱정하며 속을 태웠었다. 해외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 보겠다고 고생을 자초해 나간 아들은 어머니에겐 언제나 초미의 관심 대상이었다. 더구나 미혼이라면 더더욱 아들의 안전과 건강은 한시도 마음놓을 수 없다. 현희씨는 해외에 있는 아들을 위해 자신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함께 돈이라도 많으면 고생하지 말라고 팍팍 보내주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사정에 마음이 늘 불편했다. 그나마 카톡이나 e메일 등이 있지만 지극히 제한적인 소통에 답답했다. 그것 역시 상대편이 마음을 받아주기 전엔 일방적 짝사랑일 뿐이라고 서운해 하며.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객지에 자녀들을 보낸 어머니들 마음은 한결같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아픈 데는 없고? 생활하기 힘들진 않아?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고 제발 몸조심해라.’ 다양한 종류의 걱정과 조언을 끊임없이 한다. 현희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거의 한 가지 메시지로 아들에게 전달되는 걸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들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말이다.

‘밥 제대로 안 먹고 돌아다니지? 그러니 건강이 좋을 리 없잖아. 자연히 짜증나고 만사 힘들겠지. 내가 너 거기 갈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 그렇다고 사람들한테 성질부리고 네 멋대로 살면 큰일난다. 엄마 말 잘 들어. 엄만 네 뱃속까지 다 알고 있어.’

표현은 자식을 위하고 자식이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지만 상대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너는 엄마 없인 안 되는 거 알지.’ ‘그동안 네가 저지른 실수들을 보면 나는 너를 못믿겠어.’ ‘너는 무능한 아이야!’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그렇게 폄하할 수 있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인정한다. 나 또한 세 자녀의 엄마로서 수많은 세월 동안 이런 사랑의 눈속임을 지속해왔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태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며 감정이 요동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이 내 자식의 안위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굳게 믿고 지켰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 역시 내 뒤통수를 향해 늘 그 비슷한 걱정의 말로 자식이었던 내 마음에 고마움과 반발심과 죄책감을 동시에 일으켰지만 내가 부모가 돼보니 내 자식에게 나의 부모처럼 하고 있으니 옳은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아들이 내게 묻지 않는가. “엄만 내가 그렇게 못미더워?” 못믿은 건가 아니면 엄마로서 당연한 건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애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져 아프면 울까 말까 두 마음의 기로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반응을 볼 때가 있다. 울려고 입을 삐죽거릴 때 엄마의 반응이 ‘어휴 아팠어?’라고 함께 얼굴을 찡그리면 아기도 덩달아 ‘앙’ 울어버리고, 그 반대로 엄마가 덤덤하게 괜찮다는 듯 대하면 아기는 때때로 이 상황을 스스로 이겨낸 듯 박수치는 앙증스런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반대 상황도, 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에 따라 아기의 마음에 많은 변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녀들에겐 자신들만의 영역이 있다

현희씨도 객지에 있는 아들을 그리움과 걱정, 자기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힘드니? 음식도 입에 안 맞지? 엄마도 너 보내고 통 입맛이 없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아들이 점점 소원해지더니 엄마의 카톡을 씹으며 연락이 뜸해졌다며 지난겨울 눈물을 글썽였다.

“많이 걱정되고 서운하시죠?”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갔으니 그곳 사람들과 섞이지도 못하고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러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들이 외롭고 힘들어서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됐군요. 그렇죠.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면 더 힘들죠. 왜 그런 생각을 했나요?”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벌써 오래전 제가 결혼을 앞뒀을 때 동생이 공부한다고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갔었어요. 제가 결혼만 아니면 함께 가서 돌봐줬을 텐데. 그 후 동생이 객지에서 과로로 크게 다쳤어요. 참 똑똑한 동생이었는데 그 일로 지금도 몸이 불편한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런 아픈 경험이 있었다면 아드님이 멀리 혼자 떨어져 있는 게 참 걱정되겠어요.”

“제가 아들을 바라보며 제 동생에 대한 마음을 저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아들도 여기서 참 유능하게 자기 일을 잘했고 동생 역시 참 똑똑한 아이였는데 그렇게 되니 자꾸 제 잘못만 생각나고 제 안에 불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녀는 그 당시 자신도 모르게 아들과 동생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녀가 동생에 대한 속마음을 처음으로 꺼내놓자 드디어 아들과 동생을 분리할 수 있었다. 동생과 아들은 비슷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도 그곳에서 적응하느라 불안한데 엄마까지 저를 못믿고 불안해 하니까 얼마나 짜증나고 힘들었을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일부러 교포들도 없는 곳을 택해 갈 만큼 용기를 갖고 갔는데 엄마가 두려운 마음을 전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니 저에게 연락을 끊었겠지요. 좀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연락할 녀석이에요. 원래 현명하고 착해요.”

어머니들은 내 자녀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저 자기 수준까지다. 그러나 자녀들에겐 어머니들이 알고 있는 너머의 자신들만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이겨낼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어머니 역시 자신의 부모가 몰랐던 부분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몰랐기에 부모들은 걱정하며 때로는 믿으며 함께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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