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세계보건기구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공식질병코드로 승인했다.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은 곧 정신장애의 공식적 증거라는 역사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게임 과몰입으로 문제를 겪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구를 촉진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좋아 보이는 것들은 비싼 것이 세상의 이치다. 과연 게임이용장애라는 질병코드를 도입하면서 우리 사회가 지불할 수도 있는 잠재적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근조 현수막 단 게임산업 공대위 / 권호욱 기자
이번에 질병코드로 부여된 게임은 전통적인 게임이 아니라 디지털 게임, 비디오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컴퓨터 게임이다. 이런 게임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뉴미디어, 즉 새롭게 등장한 도구이자 콘텐츠로 정의할 수 있다.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면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이런 열광하는 모습은 이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의 불안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의료화를 선택한 것이다.
당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결정이 훗날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는 지나온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세기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영국의 ‘붉은 깃발 법’이 있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미 시속 40㎞의 자동차 기술을 발전시키며 자동차 종주국으로 부상하였다. 당시 유럽의 강국이었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자동차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영국의 자동차 기술은 독보적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1834년 세계 최초 자동차 사고가 영국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차와 기차 운송업자들은 자동차의 위험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시민들의 안전을 명분으로 자동차 운행을 억제하도록 의회에 치열한 로비를 벌인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자동차에 부과된 세금이 마차와 기차의 10배에 달하도록 하였고, 그것도 부족해 자동차 규제를 목적으로 한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이 1865년에 제정되기에 이른다.
요지는 속도와 운행요건의 강화다. 시속 40㎞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속도를 6㎞로 제한했다. 물론 그 기준은 마차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운전자 이외에 2인을 동승시켜야만 했다. 그 이유는 동승자들이 붉은 깃발(red flag)를 흔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붉은 깃발 법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한마디로 자동차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복기해 보면, 영국은 자동차의 잠재력을 19세기의 시각으로 재단하여 과소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해가 지지 않는다던 19세기 세계 최강 영국의 위세는 20세기 자동차산업으로 혁신을 이끌었던 미국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로 영국은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현재까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자동차 기술의 후퇴는 단순하게 자동차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 경제의 전반적인 활력까지 잃게 만들었다.
과연 이번 조치는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혹시라도 붉은 깃발 법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세심한 고려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 게임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