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임종자들이여, 죽음에 대해 가르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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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분이 어떠한가? 두려운가?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그 두려움은 어떤 느낌인가? 어떤 생각들이 그 내용인가?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최근 부모상을 당한 지인들을 조문하기 위해 몇 차례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 탓이겠지만 요즘 들어 부모를 여의거나 이미 여읜 지인들을 많이 부쩍 많이 만나게 된다. 고령화가 빨리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엄정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필자 역시 95세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점점 쇠약해가시는 모습을 보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그의 책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그의 책 <죽음과 죽어감>

퀴블러-로스 <죽음과 죽어감> 책 출간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격언도 있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1962년 미국 콜로라도대 의대의 한 강의실에 작은 체구에 수줍은 표정의 대학원 조교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16세 소녀 환자와 함께 들어섰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누구든 이 환자를 인터뷰해 보라”고 말했다. 머뭇거리던 몇몇 학생이 혈구 수 측정치 등 의학적 정보를 얻기 위한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꽃 같은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 소녀는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파티에 가지 못하는 것, 데이트할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것,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요?” “왜 사람들은 내가 죽어간다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거죠?” 죽음을 앞둔 소녀의 독백에 강의실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그러자 조교가 학생들에게 외쳤다. “이제야 여러분들이 과학자가 아닌 인간으로 되돌아왔군요!” 바로 이 조교가 수세기 동안 의학계에서 금기시됐던 ‘죽음’에 대한 연구와 불치병 환자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요구했던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다. 스위스 출신으로 취리히대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인 의사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해 인턴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비참한 모습을 목도했다. 그 당시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환자들은 옷이 벗겨진 채 침대나 욕조에 방치됐고, 어린 불치병 환자들은 “약을 먹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의료진의 판에 박힌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이런 참상을 목도한 후 그녀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카고대 의대에 봉직하면서 죽음 앞에 누워 있는 임종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 시도는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고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왔던 금기를 깨뜨리는 과감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달리 표현한다면 죽음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그녀는 죽어가는 동료 인간을 향해 “죽음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용감하게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한가? 두려운가?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그 두려움은 어떤 느낌인가? 어떤 생각들이 그 내용인가?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곤혹감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환자들은 그녀의 정직한 시도 앞에서 갑자기 의외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화는 환자가 죽음에 도달하기까지 매일 이루어졌고 그녀는 빠짐없이 그 과정을 기록했다.

500여명에 달하는 임종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어 얻은 지혜를 그녀는 1968년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이라는 책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나눴다. 그녀에 의하면, 대다수의 임종 직전 환자들은 그들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며,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00여명의 불치병 환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5단계를 제시했다.

500여명 임종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

제1단계인 부정(否定)의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고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부정은 거의 모든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데, 불안한 상황에 대처하는 데 비교적 건강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곧 현실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온다. 그때가 제2단계인 분노(忿怒)의 단계이다.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게 된다. 환자는 물론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이때가 가장 어려운 시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노를 마음껏 표현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여전히 자신이 존중받고 있고 가족들의 이해와 관심 가운데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분노 다음에는 제3단계인 타협(妥協)의 단계가 이어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이 연기되거나 지연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죽음 앞에서 신이나 어떤 절대적 믿음에 근거해 어떻게든 죽음을 뒤로 미루어 보려고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제4단계에서는 깊은 절망(絶望)이 찾아온다. 마음이 약해져서 슬픔에 젖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회한에 빠지기도 한다. 이 과정이 지나면 마지막 제5단계인 수용(受容)의 단계가 온다. 환자는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더 이상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마지막 생의 의미를 추구하려 한다.

물론 모든 환자들이 이 다섯 단계를 일률적으로 거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순서로 거칠 수도 있고, 또 한두 단계를 건너뛸 수도 있다. 살아가는 것 자체와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것 자체도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가 제시한 단계는 삶의 종말을 맞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유용한 안내서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결코 건강한 죽음을 맞기 위한 준거로 여길 필요는 없다.

퀴블러-로스가 물꼬를 튼 후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죽음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을 없는 것으로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하나의 사실로 담담히 맞서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모색하게 되었다. 호스피스 운동도 헌신의 결과물이다.

2004년 8월 24일 그녀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뉴욕타임스>는 퀴블러-로스 박사의 일화를 소개하는 장문의 추모기사를 게재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그녀를 선정했다.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그녀가 마지막 남긴 유언이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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