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識字)’라는 말이 있듯이 글을 아는 것은 의외로 자연 상태가 아니다. 아무리 뭐래도 글을 쓰고 읽는 것보다 말하고 듣는 것이 더 편하다. 근래 유튜브나 팟캐스팅의 유행은 언젠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신문이 TV보다 익숙한 구세대의 식자(識者)층에게는 낯선 일일 테지만 말하고 듣는 일이 쓰고 읽는 일보다 더 본능적인 일이라서다.
![[IT 칼럼]신구술문화 시대가 온다](https://img.khan.co.kr/newsmaker/1329/1329_50.jpg)
검색을 유튜브에서 하는 세대의 등장은 구술자료의 검색 가능성과 그 가치를 깨닫게 했다. 아직 영어만이지만 구글은 팟캐스팅을 검색 결과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올라오는 비디오를 대부분 문자 매체로 바꾸고 번역도 하고 있으니, 기술적으로는 이미 준비되었던 일이다. 동일한 기술은 라이브 녹취(Live Transcribe, Live Caption) 기능으로 차기 안드로이드 버전 Q에 등장할 예정이다. 이제 폰을 들고만 있으면 주위에서 말하는 소리가 전부 화면에 자막으로 뜨고, 화상통화만 해도 실시간으로 자막이 나타난다.
가장 큰 수혜자는 현장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청각장애인이겠지만, 상상할 수 있는 활용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강사의 말을 토씨 하나 빠짐없이 파일에 자동 필기해 강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공유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말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회의실도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CCTV보다 무섭지만 결국 CCTV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말이 1초의 지체도 없이 글이 되는 세상은 그렇게 찾아오고 있다. 바야흐로 신구술문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술에 의해 말과 글의 경계가, 구술과 활자 기록의 구분이 사라지는 신구술문화는 무엇보다 정보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페이지 쓰는 것조차 고역인 경우가 있다. 말하듯이 글 쓰라고 이야기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은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인 듯, 해외에서는 아예 집필 자체를 녹취로 끝내려는 이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
워낙 받아쓰기 기술의 성능이 좋아져서,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시간 정도 떠들고 나면 글 한 편이 나와 있는 셈이다.
물론 치밀한 맛은 떨어지겠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어차피 말을 한 터이기에 알아들을 만하고, 전문 교열자나 편집자가 뒤를 봐준다면 책 한 권은 우습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글은 붙들고 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시간만 흐르기도 하지만, 말이란 시간을 정해 놓고 떠들면 똥이든 된장이든 무슨 이야기라도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문화적인 껄끄러움뿐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공공장소는 물론 가정이나 사무실 내에서도 혼잣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에, 인공지능 스피커의 보급률도 떨어진다.
내년 즈음에는 과연 어딘가 계면쩍음을 무릅쓰고 모두들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렇게 찾아온 미래가 좋은 시대인지 어떤지는 늘 나중 문제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