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부처님 생일은 음력 4월 8일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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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4월에 태어나셨다’는 믿음은 하나이더라도 실제로 언제 그것을 기리게 되는지는 나라마다 나뉜다. 각 지역의 달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달력이 바뀌면서 축일과 기념일이 바뀌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부처님 오신 날 ‘웨삭’을 기념하는 모습. / pexels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부처님 오신 날 ‘웨삭’을 기념하는 모습. / pexels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일요일(양력 5월 12일)이었다. 5월에 휴일 하나가 줄어든 셈이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부처님 오신 날이 절묘하게 주말 앞이나 뒤에 걸려서 연휴가 되곤 했던 터라 빈자리가 더 커 보였던 것 같다.

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 4월 8일이어서 관습적으로 ‘사월초파일’이라고도 불렸다. 음력 4월 8일은 양력으로는 대체로 5월 초순 또는 그 언저리에 돌아오는데, 한국에서 양력 5월 초는 노동절과 어린이날 등 다른 휴일도 함께 끼어 있으므로 부처님 오신 날과 함께 연휴를 이룰 가능성이 꽤 높은 편이다.

음력 4월 8일에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게 된 것은 동북아시아에 전해진 초기 불교 경전들에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가 4월 8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된 데서 비롯됐다. 다만 초기 불교 경전이라 해도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적어도 두 세기가 지난 뒤에 문자로 정착된 것이므로, 그 기록은 엄밀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이미 석가모니가 성인 또는 신으로 추앙받게 된 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모아 적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들 초기 경전이 동아시아 전체로 퍼져 나간 결과 불교를 믿는 나라의 사람들 대부분이 부처님이 4월에 태어나셨다고 믿게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은 양력 4월 8일로 못 박아

그런데 ‘부처님이 4월에 태어나셨다’는 믿음은 하나이더라도 실제로 언제 그것을 기리게 되는지는 나라마다 나뉜다. 각 지역의 달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몇몇 화교권 국가의 음력은 이른바 ‘시헌력’을 현대에 맞춰 조금씩 고쳐 가며 쓰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음력(태음태양력)은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개력(改曆)을 거쳤는데 시헌력은 그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만든 달력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에 한반도로 전래돼 공식 달력이 유럽의 태양력(그레고리력)으로 바뀔 때까지 사용했다. 따라서 한국과 중화권 나라들(대만 제외)의 부처님 오신 날은 모두 시헌력의 4월 8일이다.

이에 비해 상좌부불교가 융성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자기네 불교력을 사용한다. 불교력은 역시 태음태양력의 일종이지만 한 해의 기점이나 날짜를 세는 방식이 동북아시아의 태음태양력과는 다르다. 불교력을 썼던 동남아시아 나라들이나 힌두력을 썼던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을 와이사카(또는 위사카) 달의 보름날에 맞춰 기려 왔다(이들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과 열반도 같은 날짜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와이사카는 달을 세는 방식에 따라 두 번째 달 또는 네 번째 달이 되기도 하므로, 동북아시아에서는 경전 해석을 통해 자신들 달력의 네 번째 달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전통을 따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몽골 등에서는 음력 네 번째 달의 보름날을 ‘웨삭’이라는 이름의 명절로 지내고 있다.

다만 서구문명의 영향으로 태양력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음력 네 번째 달의 보름날’이라는 규정은 여러 가지로 불편해졌다. 서구화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일본은 음력을 전면 폐지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도 양력 4월 8일로 못 박아 버렸다. 대만도 음력은 폐지했지만 (양력) 5월에서 4월로 바뀌는 것은 어색했기에, 양력 5월의 두 번째 일요일로 절충해 기념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나라들은 음력(시헌력) 4월 8일을 고수하고 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옛 음력을 폐지하면서 ‘와이사카의 보름날’이라는 규정이 의미를 잃게 되자, 195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정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보름달이 뜨는 데 맞춰 기념하던 명절을 양력 15일로 바꾸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1998년 스리랑카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다시 ‘양력 5월의 보름달이 뜨는 날’로 남방불교권 전체의 웨삭 날짜를 통일했다. 올해 5월에는 19일에 보름달이 뜨므로, 한국의 부처님 오신 날에서 딱 일주일 뒤에 웨삭이 된다.

유럽지역에선 크리스마스 날짜도 달라

이렇게 달력이 바뀌면서 축일과 기념일이 바뀌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인류가 세운 수많은 문명들은 수많은 달력을 만들어 왔고, 전세계의 달력이 사실상 하나로 통일된 것은 100여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럽 기독교문명 안에서도 크리스마스의 날짜가 하나가 아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1582년 그레고리력을 선포하지만 바티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동방정교회 쪽에서는 옛 율리우스력을 계속 사용했고, 그 뒤로 두 지역의 전례력에는 약 열흘 정도의 시차가 생겨났다. 오늘날에도 러시아 정교회와 세르비아 정교회는 1월 7일에,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1월 6일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다.

문명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런 일들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세계가 좁아져 가는 지금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무지는 편견을 낳고, 편견은 혐오와 차별을 낳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 철도가 개통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딱 150년 전인 1869년이다. 인적이 드문 황무지를 가로질러 철도를 까는 일을 떠맡은 것은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다. 즉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는 아시아 이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후 1903년에는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 한국인들이 발을 디디면서 한국의 이민 역사도 시작되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오랜 세월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와 풍습을 지켜 나갔다. 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음력에 바탕을 둔 설과 추석도 그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세기 넘게 흐른 뒤에야, 미국에서도 ‘중국 설(Chinese New Year)’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아시아 이민이 많은 대도시에서는 설과 추석이 동북아시아 음력을 쓰지 않는 이들에게도 즐거운 축제일이 되고 있다.

타향살이를 견뎌내던 한국 이민에게 “너희들은 음력 새해에 떡국이라는 것을 먹는다면서?”라고 알아주고 관심을 보여주는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면 무척 고맙고 반가웠을 것이다. 시선을 돌려 보면, 같은 부처님을 믿지만 시헌력의 4월 8일이 아니라 5월의 보름날 웨삭을 기념하는 이들도 이미 우리와 어울려 살고 있다. 그것을 이상하거나 불편하다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높여 주는 새로운 변화로 받아들이면 함께 살아가는 재미가 더 커지지 않을까.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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