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예쁘다고 할 것 같아 아버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하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참고 기다리면 아버지가 자신을 예쁘다고 할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아버지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단다.

영화 <두 여자>의 한 장면/경향자료 사진
한낮의 날씨가 제법 덥다. 아침나절에 걸쳤던 재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창밖에서 들리는 중년들의 수다스런 소리며 조금 전 길에서 만난 꼬마 녀석의 내달리는 모습이 5월임을 실감케 한다. 넘어질까 꽉 잡은 아빠 손을 뿌리치고 친구에게로 뛰어가는 꼬마의 모습도, 난감함과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이의 뒤를 따라가던 아빠의 모습 역시 재밌다. 나 역시 친구가 좋아 이렇게 뿌리친 부모의 손, 또 내 손을 뿌리친 내 자녀들과 어색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첫 배신의 쓴맛이었다.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살았어요”
약속시간보다 늦었다며 수미씨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어딘지 어색하다.
“괜찮아요. 길이 많이 막혔나봐요? 물 한 잔 드실래요?”
“…….” 수미씨는 내가 건네는 물컵을 쥐고 아무 대꾸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인다. 잠시 기다리며 보니 그녀의 블라우스 첫 단추가 두 번째 구멍에 채워져 앞자락이 일그러져 있다.
“수미씨 급히 오느라 거울 볼 시간도 없었군요. 단추가 하나 잘못 끼워졌네요.” 나는 어색하고 단절된 분위기를 바꾸려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아뿔싸. 수미씨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황급히 자기 옷과 나를 번갈아본다. 눈물 맺힌 놀란 눈으로 말이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람. 옷 단추 잘못 끼워졌다는 내 말이 그녀를 울리다니 황당했다.
“수미씨 미안해요. 많이 당황스러웠나봐요. 오자마자….”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본래 칠칠맞아서…. 제가 거울도 안 보고 워낙…, 그리고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 그만, 아이고.” 그녀가 얼른 눈물을 훔치며 말끝을 흐린다.
“아, 그랬군요. 어떤 생각이길래….”
“저희 아버지요.” 망설인 끝에 들릴 듯 말 듯 우물거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책임감도 강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화가 많은 무서운 분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가족들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농사짓고 읍내를 오가며 대가족을 먹여살렸다. 넉넉지는 않아도 자식들을 다 공부시키고 먹이고 입혔으니 그런 아버지가 고맙단다. 그러나 가족들이 뭔가 잘못하거나 당신 뜻대로 안 되면 불같이 화내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던 기억은 지금도 몸서리쳐진다.
“아까처럼 늦으면 아버지한테 늘 야단맞았어요. 더군다나 옷까지 칠칠맞게 입으면 벌써 손이 날아왔는데…. 순간 아니라서 울컥했어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잘못했을 때 자동적으로 마음이 얼어붙는단다. 특히 어릴 때 어머니가 마당 한가운데에 자식들을 앉혀놓고 머리 깎는 날은 그녀에겐 악몽 같은 시간들이었다. 참견하시길 좋아하던 아버지는 유독 그녀의 머리를 깎을 때면 거울 속에 비친 어린 자신을 바라보며 “너는 왜 이렇게 못생겼니. 도대체 생기다 말았단 말이야”라며 매번 혀를 차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닌다.
“저는 제가 정말 싫어요. 생긴 것도 싫고 성격도 싫고 그냥 다 싫어요. 그래서 누가 저에게 관심을 갖거나 눈이 마주치면 못생겼다고 할 것 같아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살았어요. 그런 저를 주변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그냥 집 안에 박혀 있는 게 속 편해요.” 반세기 넘는 그녀의 고정관념이 불과 몇 분 만에 쏟아져나온다.
“세상에,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겠어요.”
그녀는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예쁜 편이다. 물론 중년을 넘어 꾸미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적인 외모였다. 아버지의 개인적 주관은 어린 자식의 삶의 기준이 됐고 한평생 그녀를 괴롭혔다. 이렇듯 아이에게 부모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는 큰 영향을 준다. 특히 부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들을 때 아이에게 부모의 말은 비수가 돼 각인되고 아이는 그 왜곡된 말 속에 옴짝달싹 못하고 만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수미씨를 뭐라고 해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착한 친구가 있었어요. 어느날 그 친구가 우리 반에서 제가 키도 크고 제일 예쁘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믿었던 친구가 저를 놀리는 것 같아 그날 이후 진실되지 못한 그 친구를 멀리했어요. 물론 헤어졌지만 그 후로 저는 주변에 친구가 없어요. 아마 대부분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속상하고 외로웠겠어요. 어려서부터 듣던 아버지 말과는 달리 친구의 말들은 나를 놀리는 거짓말 같으니 당연히 그랬겠지요.”
“한평생 거울 보기가 무서웠다구요”
종종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말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을 붙잡고 사랑을 얻으려고 발버둥친다. 때로는 반항으로, 때로는 순종으로 진자운동처럼 지칠 줄 모르고 오고 간다. 그러나 희망 없는 상황에선 한 가지만을 선택한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예쁘다고 할 것 같아 아버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하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참고 기다리면 아버지가 자신을 예쁘다고 할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아버지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단다.
“얼마나 서럽고 안타까웠겠어요. 참 애썼네요. 아버지의 기준에 맞추느라….”
“…….” 소녀 수미가 하염없이 운다. 아이는 서러웠던 마음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픈 갈망에, 그 고단한 여정에 점점 흐느낀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지금은 혹시 어떻게 느껴지나요?”
그녀는 드디어 50여년의 혼란스런 항해를 접고 작지 않은 목소리를 낸다. 마음속의 아버지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떻게 어린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어요? 저는 한평생 거울 보기가 무서웠다구요. 그래도 아버지가 힘들게 저를 키워주신 것 때문에 이런 불평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았어요. 그래도 ‘우리 딸 예쁘다’는 아버지의 한마디를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이제는 아니에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50년 넘게 당연하다고 여긴 왜곡들을 서서히 녹여 다른 모습으로 입 밖에 흘러나온다.
이렇게 무겁게 뭉개졌던 마음들이 서서히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쏟아낸 말들로 인해 그녀가 점점 가벼워진다. 비로소 거친 흙 속에서 스스로 올라오는 봄 새싹들처럼 부모에 대한 진짜 고마움이 돋아난다. 자연히 그 과정에서 아이는 오랫동안 서럽게 갈망했던 말들로부터 조금씩 해방되지 않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내 가족에게 제대로 사랑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부터 세심히 살피고, 나의 구겨졌던 욕구를 펴주는 일이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