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성향 중 하나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본위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독 기계 앞에서는 이런 편향이 발휘되지 못하고 누구나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순순히 인정하고 만다. 이런 실수가 기계의 고장이나 잘못 설계된 디자인 탓인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이런 실수에 대한 책임은 사람의 몫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기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이런 현상은 기술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의식적 경험이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와 같이 기술이 극한으로 발달한 미래 상황을 배경으로 한 SF영화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는 인간의 모습 대신 왜 기계에 무기력하게 종속되거나 기계를 피해 다니는 인간의 모습이 더 많이 등장하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해답이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무기력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쓰는 전략 중 하나가 ‘동일시(identification)’다. 동일시란 자기보다 강하거나 우세한 다른 사람의 가치나 태도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따라하면서 내면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내면화한 자아는 불안을 감소시키고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일찍이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아직 어린 아들이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적대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력한 아들이 성인인 아버지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취하는 전략이 바로 동일시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한다. 이길 수 없는 적을 같은 편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심리적 전략이다. 즉 아버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와 같은 가치와 태도를 따라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켜 자기를 방어한다.
그런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일어날 시기에 거의 모든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이 열광하는 또 다른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로봇, 자동차, 비행기 같은 기계류 장난감이다. 요즘 아이들이 열광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세상으로 나온 형태들이다. 이런 장난감들에 어린아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불안한 자아와 무슨 문제나 어려움도 거뜬하게 해결해주는 능력자를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아이일수록 이런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순간은 마치 자신이 로봇이나 자동차가 된 것처럼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은 성장하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로봇, 비행기, 자동차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그 대상이 고가품으로 바뀔 뿐이다. 요즘 잘나간다는 스마트 디바이스들은 심리적으로 보면 아이들의 장난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첨단의 기기들을 선택하는 이유가 편의성이라는 생각은 적어도 심리학적으로 볼 때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 편의성을 따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할수록 혹은 강하게 보일수록 매력적인 것이다.
인공지능(AI)이라는 것을 바라볼 때 느끼는 엄청난 기대감과 함께 동반되는 두려움은 어찌보면 기술이 아버지를 대체하고 있지는 않은지 섬뜩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