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배우자의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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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디딤돌보다 걸림돌이 더 많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걸림돌과 디딤돌이 서로 다른 돌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상영된 영화 <증인>은 한 대상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뉠 수가 있고, 그 평가에 따라 결과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영화 <증인>의 한 장면/(주)무비락

영화 <증인>의 한 장면/(주)무비락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추리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고생 지우와 그를 증인으로 세우려는 변호사 순호다. 정상인이 아닌 지우는 그 대신 비상한 기억력과 엄청나게 예민한 청각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우는 상대방을 한 번 보면 그가 매고 있는 넥타이에 물방울 무늬가 몇 개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계산능력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각광받는 ‘긍정심리학’

큰 로펌을 대표하는 변호사 순호는 1차 공판에 내키지 않는 증인으로 나선 지우에 대해 그녀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비정상인임을 내세우며 증언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증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지우가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읽는 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그녀의 증언만으로는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지만 이 과정에서 지우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 매도되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결정적인 2차 공판에 자발적으로 증인으로 나선 지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순호는 이번에는 그녀의 특별한 능력, 즉 예민한 청각능력을 부각시키면서 지우가 범인이 살해 장면에서 한 말을 기억해내도록 유도한다. 범행이 일어난 날 밤 창문 너머로 들린 범인의 말을 그대로 재생해낸 지우의 증언에 따라 진짜 범인이 가려진다. 이 장면에서는 지우의 얼굴 표정을 잘 식별하지 못하는 결점보다는 예민한 청력과 기억력이라는 장점이 이용되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우게 된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 지우는 사실 우리 모두를 상징적으로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못하다. 비록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을지언정 우리도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신체적인 장애가 없을지라도 정신적인 장애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니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정신적 장애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장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또는 단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태도가 다르면 그 상대와 맺는 관계의 양상과 질이 달라진다. 지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우의 단점을 강조하면 신뢰할 수 없는 증인이 된다. 하지만 그녀의 장점을 이용하면 더 없이 값진 증인이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심리학은 큰 변화를 맞는다. 이 변화를 통칭 ‘긍정심리학’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의 심리학이 주로 불안과 우울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성(自省)하게 된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충분하다. 신체적인 질병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건강도 부정적인 측면을 진단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의 부정적인 모습과 그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런 접근은 이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앞으로도 몸과 마음의 질병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사례를 통해 더 정확한 원인 파악과 함께 치료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질병의 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생각에 따라서는 치료보다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성찰을 바탕으로 긍정심리학이 발달하게 됐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장점을 찾아 그 장점을 더욱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행복한 삶에 이르는 길은 부정적인 면을 제거하거나 부족한 면을 채우는 것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모두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삶에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참모습이 보여

부부 사이에 불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인이나 남편에게 배우자의 좋은 점을 찾아보도록 한다. 그러면 십중팔구 처음에는 장점이 거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좋은 점이 한두 개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큰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보도록 훈련을 시키면 하나둘 장점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 훈련이 진행되면 지금까지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배우자가 알고 보니 장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곤 한다.

우리의 장점은 삶의 큰 자산이고 ‘디딤돌’이다. 반대로 결점은 우리의 행복과 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디딤돌과 걸림돌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은 디딤돌보다 걸림돌이 더 많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잘 사는 사람은 걸림돌보다 디딤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걸림돌과 디딤돌은 서로 다른 돌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말수가 적은 남편이 연애시절에는 과묵하고 믿음직스러워서 결혼을 했지만, 현재는 너무 말수가 적어 재미가 없고 오히려 답답하기만 하다. 연애시절에는 디딤돌이 되어 결혼까지 이르게 했던 ‘과묵함’이 후에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기보다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던 ‘열등생’이 후에는 큰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성공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디딤돌’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크거나 많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꾼 것이다.

<증인>의 지우가 가지고 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도 평소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정신의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명저에서 ‘사랑은 존중이다. 존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참모습이 보인다. 지우의 표현대로 “변호사는 될 수 없어도 증인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손님이 왔는데도 나와 보지 않는 지우를 비난하고 억지로 오게 하기보다는 내가 지우에게 가면 된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바로 지우이기 때문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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