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는 딸 맥시마가 스마트폰과 씨름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닥터 세우스’라는 이야기책을 읽기를 권하고, 밖에 나가 꽃향기를 맡고 뛰어놀 것을 독려한다. 스크린이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더 자주 대화하고, 함께하며 여행하는 걸 즐긴다. 빌 게이츠도 다르지 않다. 빌 게이츠는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지 않았다. 컴퓨터도 오직 주방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인은 하루에 몇 시간 이상 독서를 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는 ‘테이블엔 태블릿이 없어야 한다’는 육아 철학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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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스크린의 홍수를 선사했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에 디지털 사이니지까지. 기술이 만든 세계는 디지털 스크린이라는 벽지로 도배해 인간의 몰입과 관심을 유혹한다. 또한 스크린 간의 경쟁 과잉은 더 높은 집중을 요구하는 콘텐츠 경쟁도 초래했다. 인간의 주의력을 잠시라도 앗아올 수 있다면 자극적인 이미지를 내보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인간은 스크린에 한 번 시선을 빼앗기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실리콘 밸리의 거부들은 잘 알고 있다. 스크린 노출이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적·교육적 효과를 미치는지를 말이다. 실리콘 밸리의 부모들이 선호하는 사립학교 ‘월도프 스쿨’은 테크놀로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도 정작 학생들에겐 스마트폰 휴대는 금지한다. 그만큼 엄격하게 스크린 노출을 통제한 덕에 실리콘 밸리 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표적 사립학교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들 실리콘 밸리 부자는 자녀들이 스크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프라인 대면접촉 기회에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여행이나 저녁식사, 다른 친구들과의 놀이 프로그램 등등. 스크린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이들의 건강에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이면으로 실리콘 밸리의 기술기업들은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더 많은 노트북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뱉는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현상을 두고 ‘인간과의 직접 대면 관계가 고가품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부유층들은 비싼 돈을 지불해서라도 ‘대인-대면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저렴한 금액으로 스크린 접촉과 관계에 더 의존하는 경향을 두고 내린 결론이었다. 셰리 터클의 말을 인용해 스크린 노출을 ‘패스트푸드’와 같다고 강조한 까닭일 게다.
기술에 따른 빈부의 격차는 사람과의 대면접촉의 기회를 희소하게 만들고 있다. 정보 희소성에 사라진 자리를 대면 희소성이 대체한다. 수십만 원을 들여 독서 모임에 나가는 국내 직장인,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참석하려는 수많은 젊은 시민들. 이들이 바라는 건 더 이상 소셜네트워크가 제공해주는 ‘외로운 연결’이 아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건 심연에 뿌리내린 본질적 고독을 해소해줄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이 같은 대면의 기회가 점차 비싸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은 더더욱 스크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 대면 기회의 가치는 갈수록 고가화하는 트렌드를 방치할수록 빈부의 격차는 문화와 건강의 격차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대학과 사회가 긴급하게 풀어야 할 숙제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