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스타벅스 매장에는 언제부터인지 ‘현금 없는 매장’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이미 한국의 캐시리스 결제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 스타벅스만 해도 실제로 현금 결제 비율이 3% 내외였다고 하니 표지를 붙일 필요조차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현금보다 카드를 포함한 전자 지급 결제가 깔끔하고 쾌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어서, 현금을 휴대하고 다니지 않아도 카드만 있다면 일상생활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 소상공인들도 손님을 받기 위해서는 카드단말기를 늘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셈이다. 카드는 충분히 편리하기에 한국의 모바일 지급 결제는 좀처럼 속도가 나고 있지 않다. 결국 시장을 만드는 것은 소비자다.
![[IT 칼럼]유령 같은 프로젝트 제로페이는 이제 그만](https://img.khan.co.kr/newsmaker/1321/1321_50.jpg)
최근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제로페이를 융단폭격식으로 홍보 중이다. 수수료를 ‘0’로 해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낮추자는 것인데, 매출이 얼마 안 되면 부가세에서 공제해주기 때문에 이미 영세 카드가맹점의 실질수수료는 다른 원가에 비하면 큰 부담이 아니다. 게다가 소비자의 혜택은 무엇인지 모호하다. ‘착한 서울시민 당신에게 47만원이 돌아옵니다’라는 과장광고는 5000만원 연봉의 절반을 제로페이로 써야 하고 그마저도 소득공제율을 올려주는 법 개정을 해야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정책을 설계할 때 위험한 것은 ‘정의를 구현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해 세금을 필두로 하는 공공자원을 무분별하게 충당하는 일이다. 이 공공자원에는 장부에 잡히지 않는 비용도 포함된다. 실적을 위해 일선 공무원들이 열심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뛰고 있다. 현재 제로페이의 각종 비용은 은행 등 간편결제 사업자가 부담한다. 척지기 싫기에 공익 차원에서 손실을 참는 셈인데, 그 비용 또한 원래는 소비자와 주주의 몫이다. 그럼에도 올해 홍보비만으로 서울시와 중소기업부가 각각 38억원, 60억원을 더 들일 예정이라고 한다.
왜 그 비용을 쓰지도 않는 시민과 국민이 나눠서 내야 하는가. 아무리 밑 빠진 독이라도 공공자원은 계속 부을 수 있으니 민간상품처럼 쉽게 퇴출되지도 않는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 유령 같은 프로젝트는 실적이 되기도 한다.
차라리 정책목표를 ‘투명한 캐시리스 사회’라 하고, 그 방면의 선진국인 북유럽에서 성공한 모바일 페이먼트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면 어땠을까? 스웨덴의 Swish, 덴마크(와 핀란드)의 MobilePay, 노르웨이의 Vipps 등의 성공사례들은 원래 개인과 개인의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금융권의 주도로 만들어져 성장해 왔다. Vipps와 MobilePay는 한 나라에서 경쟁할 정도로 자생적으로 생겨났고, 모두 알아서 헤쳐 모여 협업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미래에는 분명 종래의 신용카드 비율은 낮아지고 새로운 지급 결제 수단이 대체해 나갈 터이지만, 이를 정부가 직접 할 이유는 없다. 자꾸 폼나는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공복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 기존의 카드사와 금융권을 소상공인을 착취하는 가상의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혁신의 물꼬를 터주고, 그 혁신이 지나쳐 소외되는 이들이 생길 때 개입하는 일이다. 소비자는 새로운 금융의 혁신에 목마른데, 지금은 모두 제로페이의 홍보물에 가려지고 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