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수님 조금만 더 친절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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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인간적인 배려를

몇 달을 기다린 진료 단 몇 분이면 끝나… 어려운 설명 이해하기도 힘들어

“아픈 게 죄지, 아픈 게 죄야.”

환자나 보호자들이 넋두리처럼 흔히 하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아픈 건 절대 죄가 아니다. 그런데 왜 아픈 환자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걸까?

병원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플리커

병원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플리커

요즘 TV나 소셜미디어(SNS)에 종종 등장하는 백화점이나 식당에서 벌어지는 고객들의 갑질이 병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소위 말하는 ‘빅5’ 병원이라고 불리는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를 받거나 TV에 명의라고 소개된 교수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씩 기다리는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만난 교수에게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갑질은커녕 병원에서 환자는 ‘을 중의 을’이다. 내 몸을 맡긴 교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이진 않을까 두려워 정당한 요구조차 쉽게 하지 못하고 염려하는 모습이 때론 안타깝다.

의사에게 밉보일까봐 제대로 말도 못해

환자나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교수님은 언제 오세요? 교수님은 언제 만날 수 있어요?”다. 교수님 진료를 받으려고, 수술을 받으려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병실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교수님이 다녀갔을 때, 그 짧은 시간을 안 기다려주고 야속하게 가버렸지만 화도 못낸다.

몇 년 전 병원장의 비리사건이 불거졌을 때,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몇천 명씩 서명하는 병원장 퇴진 청원서에 무서워서 서명하지 못하겠다고 대신 가족이나 친척 이름을 적고 가도 되냐고 하는 환자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환자들이 “여긴 병원이 갑이야 갑!”이라며 병원의 불친절함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에는 “환자가 많으니까,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엄마가 수술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기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환자나 보호자가 되는 것은 꽤나 서러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 ‘빅5’ 병원에서는 고작 대구에서 올라오는 것은 대단한 유세거리도 되지 못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일하면서 전남·경남지역 환자뿐만 아니라 제주도나 중국에서도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검사 일정이나 교수님 외래 일정 등은 환자 중심이 아니라 병원 중심이었다. 예약센터에서 최대한 조정해 주려고 애쓰긴 했지만 애초 워낙 촘촘하게 짜여진 검사 및 진료 스케줄이다 보니 엄마 개인 일정에 맞춰 예약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하루는 초음파를 찍으러, 또 하루는 CT를 찍으러, 또 다른 하루는 검사 결과 설명을 들으러, 엄마는 그렇게 서울과 대구를 수차례 왔다갔다 해야 했다. 병원 스케줄에 맞춰 정해주는 검사와 외래 날짜, 결국 여러 차례 서울을 오가다 지친 엄마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포기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겨우겨우 설득해 우여곡절 끝에 거의 1년 만에 다시 검사를 하고 수술날짜를 정했다. 하지만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호자로서 엄마를 따라 들어가본 외래진료실은 마치 스피드퀴즈 같았다. 1분 이내로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증상들을 최대한 많이 말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엉뚱한 소리를 하면 의사는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만약 보호자가 젊은 편이거나 의료인이면 짧은 외래진료 시간 동안 의사에게 필요한 정보만 쏙쏙 골라 전달하지만 둘 다 노인이거나 의료지식이 없으면 1~2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이 스피드퀴즈의 정답을 몇 개나 말할 수 있을까. 어렵게 잡은 외래진료인데 동네의원보다 훨씬 비싼 진료비를 내고 엉뚱한 얘기만 하고 정작 말해야 할 주요 증상은 말하지 못한 채 다음 환자에게 밀려 진료실을 나와야 했을 것이다.

스피드 퀴즈 같은 외래진료 문답

수술 전 동의서를 받을 때도 엄마와 다른 종류의 수술을 받는 환자와 같이 설명을 들어야 했다. 수술 부작용이나 위험이 ‘거의’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술 당일에는 수술 일정이 갑자기 변경됐는데, 환자 이송직원이 엄마의 병실 문을 열고 들이닥쳤을 때야 수술 일정이 변경된 것을 알게 됐다.

공장처럼 돌아가는 대형병원들에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상품처럼 다뤄진다. 엄마는 수술 후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를 찍고 몇 주 후에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외래진료를 보러 갔다. 담당교수가 부재 중이라서 대신 진료를 봐주러 온 의사는 엄마한테 퉁명스런 말투로 왜 왔느냐고 물었다. 초음파 결과를 들으러 왔다고 하니 “괜찮네, 안 와도 되는데 왜 오셨어요”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30초 만에 진료실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우리는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인지, 믿을 수 있는 병원인지 몰라 불안한 환자들은 그래도 유명한 병원이 좀 낫겠지 하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환자들은 교수님의 퉁명스런 말 한마디도 마치 중요한 신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런 불평조차 못하고 그것을 고이 품고 돌아간다.

물론 직원들에게 지나친 친절을 강요하거나 돈을 내고 진료를 받으니 돈을 내는 쪽이 갑질을 할 수 있게 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고급 레스토랑처럼 고객만족 서비스에만 신경을 쓸 수는 없다. 그냥 그런 갑을관계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몸이 아픈 사람에게,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에게 좀 더 배려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병원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약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부족하다.

하지만 막상 병원이 바쁜 것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도 ‘진료기여수당’이라고 불리는 의사 성과급제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고, 최대한 많은 검사와 시술을 시행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이 환자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조차 베풀 짬이 없다. 이런 푸대접을 받다보니 환자들 입에서 “아픈 게 죄지”라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아픈 건 죄가 아니다. 바쁜 병원, 그리고 병원을 바쁘게 돌아가게 하는 구조가 죄다.

<최원영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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