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기술의 각축장이다. 승자는 언제나 기술의 힘으로 무장하고 있었음을 지난 역사는 가르쳐 준다. 그래서인지 군은 기술의 산실이었고, 인터넷에서 위성항법장치(GPS)까지 어찌 보면 우리는 국방기술의 부산물 위에서 살고 있다.
강력한 기술적 격차가 전쟁 자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동시에 그 기술 격차가 전쟁의 전쟁스러움을 잊게 하기도 한다. 전쟁스러움이란 바로 육신이 찢기는 피비린내의 끔찍함,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처절한 교훈과 함께 남기는 비참함이다. 만약 기술의 진보로 그러한 감정적 상흔 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려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경향DB
지난주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헤드셋인 홀로렌즈를 사용한 국방 프로젝트를 취소하라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미군의 통합 시각 강화 시스템(IVAS)이라는 이 프로젝트는 10만개의 홀로렌즈 헤드셋이 공급되니 꽤 큰 프로젝트. 직원들로서는 증강현실로 “건축가와 엔지니어와 의료현장을 돕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화성 탐사선을 조종하는 일”일 것이라고 믿으며 일했는데, 증강된 현실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니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서명된 직원 서한에는 세 가지 요구가 있었다. 미군과의 IVAS 계약 종료 및 모든 무기기술 개발을 중단하고, 이 약속을 명확히 밝히고 공개적으로 수용 가능한 사용 정책을 수립하며, 미래의 프로젝트 평가를 위해 ‘외부 윤리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강경한 내용이다. 이 같은 요구는 이미 지난해 구글 직원 4000여명이 서명함으로써 메이븐이라 불리던 인공지능 군사 프로젝트에서 구글이 철수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로 선출한 기관에 기술을 보류하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결정을 했다”는 것. 이 또한 일리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례는 다소 다르다. 구글의 경우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기계에게 결정적 판단을 위임해도 좋으냐’는 문제가 화두였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는 일종의 신체의 확장과도 같은 증강현실을 국방에 활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그런데 칼도 활도, 그리고 총기도 모두 신체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증강현실과 같은 기술은 신체의 확장이 아니라, 신체의 차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응당 신체가 느껴야 하는 감정의 흐름을 막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육신을 전투의 물리적 장소와 분리해 버리고, 적과 화기와 폭발을 픽셀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 단말마의 비명과 폭음과 화약 내음이 만들어 내는 참상을 스코어로 포장할 수 있다.
이미 조이스틱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시대다. 무인 드론이 벌이는 전쟁은 전쟁의 윤리문제를 야기한 지 오래다. 마치 게임을 하듯이 교전을 하게 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끔찍함 앞에서 겸허하게 느끼게 될 인간성을 회복할 기회마저 잃게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는 전쟁이 미래라고 느끼지만, 인간이 희생되지 않는 전쟁은 없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