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우주쓰레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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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는 1978년, 스페이스 데브리가 이렇게 점점 늘어나다 보면 그 수가 임계점을 넘어서 데브리끼리 충돌하면 그 파편이 다른 데브리와 충돌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성 탐사선 오퍼튜니티의 그림자 / 경향신문 자료사진

화성 탐사선 오퍼튜니티의 그림자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퍼튜니티(Opportunity).’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자들은 2004년 1월 25일 화성 표면에 착륙한 탐사 차량(로버)에 ‘기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보다 꼭 3주 앞서 ‘스피릿(Spirit)’이라는 로버가 먼저 화성에 착륙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니 개척정신으로 길을 열면 거기서 생겨나는 기회를 잡아 화성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바람을 담은 이름들이었을 것이다.

2대의 로버는 애초 약 90일 정도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설계됐다. 그러나 스피릿은 6년 동안, 오퍼튜니티는 15년 동안 지구와 통신을 유지하며 20여만장의 사진 등 화성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모래폭풍 등 화성의 열악한 환경을 버티며 분투한 끝에 스피릿은 2010년 3월에 지구와 교신이 끊겼고, 오퍼튜니티도 지난 2월 13일 더 이상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NASA는 오퍼튜니티 탐사계획의 종료를 선언했다. 퇴역한 로버는 화성 ‘인내의 계곡’ 어딘가에 잠들게 되었다.

우주 개발의 역사 뒤에 흩어진 잔해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명절(?)인 밸런타인데이에 기계가 멈추었다는 이야기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소식이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 뉴스를 들은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오퍼튜니티가 교신이 끊기기 전 보낸 마지막 센서 정보를 인간의 언어로 번안하여 “배터리가 떨어지고, 주위는 어두워집니다”라고 그가 유언이라도 남긴 것처럼 의인화한 글과 그림이 특히 큰 호응을 얻었다. 광막한 화성의 모래바람 속을 15년 동안 혼자 누비며 인류를 위해 헌신하다가 외롭게 마지막 어둠을 응시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언젠가 인간이 다시 찾아내줄 것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것은 오퍼튜니티 혼자가 아니다. 화성보다 먼저 인류가 접촉한 천체인 달에도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망각 속에 남아있다.

구소련은 무인탐사선 루나 2호를 1959년 달 표면에 충돌시켜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건드렸으며, 이후 모두 8차례 월면에 무인탐사선을 보냈다.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필두로 6차례 유인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이들이 보낸 무인탐사선과 유인착륙선의 하단부, 그리고 인도와 중국 등 다른 나라가 보낸 무인탐사선과 로버 등은 모두 달에 남아있다. 달은 대기와 물이 없으므로 풍화도 일어나지 않고, 이 잔해들은 다른 인간이 찾아와 치우거나 옮기지 않는 한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땅에 발을 딛지 않은 채 공간을 떠다니는 잔해들도 있다. 구소련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올린 이래, 2018년까지 세계 각국이 쏘아올린 위성은 약 4900기에 이른다(최근에는 매년 300~400기의 새로운 위성이 발사되고 있다). 그 가운데 현재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약 1900기이고 나머지 약 3000기는 수명을 다한 뒤 돌멩이와 마찬가지로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할 일을 다한 로켓 아랫단의 잔해, 우주비행체 발사과정에서 생겨난 파편과 먼지 등 여러 종류의 우주쓰레기(스페이스 데브리·space debris)가 대기권 밖 어딘가에서 지구 중력에 붙들려 머물고 있다. 우리가 올려다보는 밤하늘은 사실 꽤나 붐비는 공간이다.

돌아오지 않는 길을 떠난 물건들도 있다. 미국이 1977년 발사한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는 ‘여행자’라는 이름이 뜻하듯 갈 수 있는 우주의 가장 먼 데까지 가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보이저 1호는 2013년, 보이저 2호는 지구를 떠난 뒤 40여년이 흐른 뒤인 2018년 12월 태양계를 벗어나 광막한 우주공간으로 들어섰다. 언젠가 장비가 하나둘 고장 나고 교신이 끊기면 이들도 광대무변한 우주를 가로지르는 ‘스페이스 데브리’가 될 것이다. 그 여정에 끝이 있다면 언젠가 무거운 천체를 만나 그 중력에 이끌려 부딪치는 날일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영향권을 벗어난 보이저 1호가 또 다른 항성을 만나는 것은 아마 4만년 뒤쯤이리라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4만년 뒤 보이저 1호가 보내오는 신호를 받을 누군가가 지구에 남아있을까?)

우주에 인간이 남긴 ‘스페이스 데브리’ 중에는 한때 살아 숨쉰 생명체의 사체도 있다. 우주개발 경쟁의 초기, 인간을 무작정 우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므로 구소련과 미국은 우주선에 동물을 먼저 태워 보내고 우주비행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유명한 구소련의 비행견 라이카를 비롯해 초파리, 거북, 고양이, 개, 침팬지 등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에 앞서 우주를 탐험했고,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살아서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동물들은 그들이 탄 우주선과 함께 우주의 일부가 되어 있다.

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는 1978년, 스페이스 데브리가 이렇게 점점 늘어나다 보면 그 수가 임계점을 넘어서 데브리끼리 충돌하면 그 파편이 다른 데브리와 충돌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현상은 뒷날 ‘케슬러 신드롬’이라고 불리며 과학소설 등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스페이스 데브리의 수가 위험한 선을 넘지는 않은 듯하지만, 미래의 가능성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미래의 기술은 어떤 얼굴을 할 것인가

유키무라 마코토의 만화 <플라네테스>(1999~2004)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걸작이다. 우주비행이 활발해진 2070년대의 미래 세계에서 우주쓰레기가 안전한 우주비행의 장애물이 되고, 그에 따라 데브리 청소부가 새로운 직업이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우주에서 활동하지만 사회의 관심이나 존경은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음지에서 일하는 주인공을 보노라면 거대 기술사회에서 노동의 소외 문제가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어두운 상상도 고개를 든다.

하지만 차갑고 딱딱한 잔해와 사체들을 남기는 것만이 과학기술의 전모는 아니다. 현대문명에서 파생되는 비정함을 줄여줄 수 있는 것 또한 과학기술이다.

영국 서리대학의 연구진은 인공위성에서 그물을 던지거나 작살을 쏘아 우주쓰레기를 거둬들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의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문제를 인간이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과학기술이 반드시 냉정한 얼굴을 하고 진보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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