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이라는 것은 ‘내가 어제와 똑같은 생활을 누리면서 오늘 더 싸고 풍부한 에너지를 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에너지의 도입과 동시에 개인의 삶이 바뀌어야 하고, 사회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2019년 1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낱말 중 ‘수소차’ 또는 ‘수소경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전기차 기술 경쟁을 뛰어넘어 다음 세대, 또는 다음다음 세대의 기술이 될 수소 기반 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정부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수소차 대장주’ 따위의 키워드가 검색 상위권을 차지했고 수소차의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 인터넷 여기저기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수소차란 정확히 무엇인가? 수소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가볍고 불이 잘 붙는 기체다. 이 수소로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간단한 이름은 착각을 낳기도
화제가 되고 있는 수소차란 엄밀히 말하면 ‘수소연료전지 전기차’를 말한다. 연료전지가 무엇인지 등은 다시 설명하겠지만, 일단 그 긴 이름에 비해 수소차라는 간단한 이름이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소경제’ 같은 파생어를 만들기도 당연히 더 쉽다.
하지만 간단하고 외우기 쉬운 이름은 오해와 착각을 낳기도 쉽다. 주식시장 정보지의 ‘수소 테마주’ 같은 말은 솔깃하게 들리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수소경제와 연결된다는 것인지는 알기 쉽지 않다. 이렇게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올리게 되면서 생명력을 얻은 낱말들이 적지 않다. ‘탄소산업’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의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은 예전에도 종종 있었다. 특히 수소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던 1951년 6월, 한 일본인 기술자가 임시수도 부산의 해군본부를 찾았다. 오카다(岡田)라는 성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그 일본인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을 만나 자신이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으니 연구를 지원해 달라고 제안했다. 손 제독과 이승만 대통령 등은 이 제안에 반색해 오카다에게 실험실을 차려 주었으나 그는 2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의혹의 눈초리가 거세지자 오카다는 마지못해 진해 항만에서 폭발 시연을 했으나 ‘수소폭탄’이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귀엽다 할 정도의 작은 폭발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손 제독이 추궁하자 그는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그가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수소 기체를 연소하여 폭발시키는 폭탄’이라는 것이었다. 수소로 만든 폭탄이니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는 구석도 있었지만 수소폭탄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막대한 위력의 폭탄’을 기대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사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오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대’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정착해 본인의 진짜 전공인 축전지 연구를 통해 한국 기술 발전에 나름의 기여를 하기는 했다.)
수소폭탄이 수소를 연소시키는 폭탄이 아니듯, 수소차도 수소를 연소시켜 구동하는 자동차는 아니다.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도 크게 보면 전기자동차의 일종이다. 다만 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원이 일반 전기자동차는 축전지인 데 비해 수소차는 수소연료전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연료전지’라는 말을 알아야 한다. 연료전지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전기분해의 반대 과정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에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면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는데(전기분해), 반대로 적절한 반응조건과 촉매를 갖추고 수소와 산소를 섞어 주면 이 두 원소가 반응하여 물을 만들면서 전기에너지를 내놓는다(수소연료전지).
축전지는 이름 그대로 전기를 비축하는 장비이므로 채워주는 에너지도 전기의 형태여야 한다. 이 때문에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전기자동차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연료전지는 가솔린 자동차가 휘발유를 주유하듯이 액화수소를 채워주면 그것이 대기 중의 산소와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 내므로, 현재의 자동차와 비슷하게 빠른 시간 안에 충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전기에너지를 만들고 남는 부산물도 산소와 수소가 결합한 물이므로, 유독물질과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대기오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효율 좋아지지만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
이렇게 써놓고 보니 수소차가 왜 빨리 실용화되지 않는지 조바심이 날 지경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 발 물러나 생각해 보자. 수소차와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 등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수소는 지구상의 물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지만 이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전기 또는 화석연료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수소연료전지가 정말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기술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하지만 현재 더 나은 기술이 앞으로도 쭉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고, 기술이란 자원을 투입하면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에, 현재의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들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소연료전지, 또는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더 진보한 새로운 동력원을 만들어낸다면, 우리의 에너지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계들은 처음 그것을 발명했을 때와 비교하면 효율이 놀랄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기계 하나하나의 효율은 높아진 만큼 한 사람이 쓰는 에너지의 양도 크게 늘어났다.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매일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르는 의식은 각종 휴대용 전자제품을 충전기에 꽂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하나하나의 효율이 좋아졌다 해도, 한 사람이 쓰는 기계의 수가 늘어난 만큼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도 늘어났다. 더욱이 전세계의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후발산업화 국가의 사람들이 다양한 전기·전자제품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세계의 인구가 쓰는 에너지의 총량은 더욱 더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의 소비량이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면 기기 각각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총에너지의 고갈을 다소 늦춰 주기는 하겠지만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 전환’이라는 것은 ‘내가 어제와 똑같은 생활을 누리면서 오늘 더 싸고 풍부한 에너지를 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에너지의 도입과 동시에 개인의 삶이 바뀌어야 하고, 그 변화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사회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그 효과는 더 많은 에너지 소비로 금방 상쇄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