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아직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천체인 달의 상징성은 다른 행성들이 필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9년 벽두에 창어4호를 세계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시켰다.
달은 지구의 하나뿐인 위성이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다. 지름은 지구의 약 4분의 1인데, 태양계 전체에서는 다섯 번째로 크지만 중심 행성과 견준 상대적 크기는 가장 큰 위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달은 매우 크다. 다른 행성과 항성들은 작은 점 정도로 보이지만 해와 달은 낮과 밤의 하늘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예부터 달을 하늘의 주인공 중 하나로 여겨 왔다. 어느 문명이든 달에 대한 신화와 전설이 풍성하다. 해보다도 달에 대한 전설이 많은 듯도 한데, 활동이 적은 밤에 눈을 상하지 않고 오래 쳐다볼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러 문명의 사람들은 달 표면의 푸르스름한 무늬를 보면서 달에 두꺼비가 살고 있다거나, 옥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다거나,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째서 달은 항상 앞면만 보이는가
그런데 달 표면의 무늬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크기나 위치가 바뀌지 않고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옥토끼가 달 뒤편으로 숨었다가 다시 앞으로 나오는 일은 없다.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즉 지구상의 사람들 눈에는 달은 항상 ‘앞면’만 보인다.
천체들이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라 오히려 행성과 위성 사이에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조석고정(潮汐固定·tidal locking)’이라고 하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공전하는 한 쌍의 천체가 서로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 결과 오랜 시간이 흐르면 작은 천체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일정한 비율로 고정된다는 뜻이다.
조석, 즉 밀물과 썰물이 어떻게 달의 자전주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지구와 달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달과 지구는 만유인력에 의해 서로를 끌어당기고, 그 결과 두 천체는 완전한 구형이 아니라 아주 조금이지만 서로를 향해 더 길쭉한 타원체에 가까운 형상이 된다(표면이 액체로 덮여 있는 지구에서는 조석의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이 타원체의 끄트머리가 지구와 달을 잇는 선 위에서 벗어날 경우, 지구의 중력이 그 쪽으로 더 강하게 작용해 다시 지구 중심 쪽으로 잡아당기게 된다. 이 효과는 하루이틀 사이에는 느낄 수 없을 만큼 미미하지만, 수십억 년에 걸쳐 누적되면 결국 달은 항상 같은 부분이 지구를 향하게 된다. 즉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달이 항상 앞면만 보인다는 것은 예로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뉴턴역학을 천체 운동에 적용할 수 있는 정교한 수학적 장치들이 완비된 뒤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18세기 말 무렵 근대과학을 배운 이들은 인간이 지상에서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납득하게 됐다.
항아와 옥토끼가 찾아간 달의 뒷면
그러나 인간은 약 200년이 지나지 않아 기어이 달의 뒷면을 보고야 말았다. 인간은 우주를 누비겠다는 오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고, 1961년 구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지구 대기권의 벽을 돌파한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인류가 가장 친근하게 여긴 달을 향해 눈을 돌렸다. 소련은 1959년 9월 무인탐사선 루나 2호를 달 표면에 충돌시켜 처음으로 달과 물리적 접촉에 성공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루나 3호가 처음으로 달의 뒷면 상공을 비행하며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달의 뒷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소련을 추월하기 위해서는 소련이 아직 시도하지 않은 목표, 즉 달을 향한 유인비행에 도전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1968년에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를 일주하는 데 성공했고, 1969년에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해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다. 1972년 아폴로 17호를 끝으로 유인 달 탐사계획이 종료될 때까지 24명의 미국 우주비행사가 달 궤도에 진입했고 12명이 달의 땅을 밟았다. 소련은 무인 탐사에 집중해 1976년 루나 24호까지 8회의 무인탐사선 착륙을 성공시켰다.
치열했던 달 탐사 경쟁이 일단락된 뒤, 달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관심은 다소 시들해졌다. 소련은 금성 탐사와 우주정거장 건설에 열중했고, 미국은 화성을 거쳐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달은 아직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천체인 달의 상징성은 다른 행성들이 필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후발국가로서는 실패의 부담을 비교적 적게 안으면서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기도 하다. 일본은 1990년 이후 여러 차례 달 궤도 비행에 성공했고, 인도는 2008년 무인탐사선을 월면에 경착륙시켰다. 그리고 중국은 2013년 창어 3호를 달에 연착륙시켰고 2019년 벽두에는 창어 4호가 세계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해 로버(달 탐사차량) 위투 2호를 월면에 무사히 내려놓았다.
우주선의 이름 ‘창어(嫦娥)’는 중국 전설 속의 여신으로 한국식으로는 ‘상아 또는 항아라고 읽는다. 그리고 탐사차량 ’위투’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옥토끼다. 항아는 남편 후예와 더불어 하늘의 신이었지만 죄를 짓고 인간의 몸이 되어 하늘에서 쫓겨났다. 후예는 슬퍼하는 항아를 위해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해 왔는데, 항아는 이것을 나눠 먹으면 함께 불로장생할 수 있지만 혼자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약을 훔쳐 달로 도망쳐 버렸다. 항아가 달의 여신이 된 과정이다. (달 표면에 두꺼비처럼 보이는 무늬가 항아가 벌을 받아 변한 모습이라는 다른 결말도 있다.)
달 탐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지구와 등지고 있는 달 뒷면에 우주선을 내리려면 달 뒷면까지 통신이 닿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은 통신을 매개하는 인공위성을 활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전설 속의 항아와 옥토끼를 다시 불러낸 것은 중국이 서양의 길을 따라가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경쟁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