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향방, 특급 도우미 발끝에 달렸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손흥민은 특급 해결사지만 태극마크를 달면 도우미로 변신하는 선수다. 손흥민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6경기를 뛰면서 1골·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축구의 꽃은 골이다. 골잡이들의 화려한 골 장면은 언제나 관중석을 뜨겁게 달구지만, 그 이면에는 소리 없는 영웅들의 노력이 존재한다.

기성용(왼쪽), 손흥민(오른쪽)

기성용(왼쪽), 손흥민(오른쪽)

수비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패스인 어시스트를 배달하는 미드필더가 그 주인공이다. 2019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리는 제17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의 향방도 미드필더들의 활약상에 달려 있다. 21세기 들어 아시안컵 최고의 선수(MVP) 대부분이 미드필더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아시안컵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미드필더는 역시 한국의 간판스타 기성용(30·뉴캐슬)이다. 그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한 이래 한국 축구를 이끌어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현역선수로는 유일하게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출장)에 가입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1m87의 장신인 그는 예리한 중·장거리 패스와 폭넓은 시야, 수준급 활동량을 갖추면서 한국을 넘어 유럽에서 활동했다.

우승 노리는 한국의 기성용과 손흥민

국가대표 은퇴를 예고한 기성용에게 이번 아시안컵은 마지막 대회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 참가한 2011년 카타르 대회와 아깝게 준우승에 그친 2015년 호주 대회보다 성숙한 자세로 도전장을 내민다. 대회 초반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을 다쳤지만 큰 부상은 아니라 59년 만의 우승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기성용은 “마지막 아시안컵에선 꼭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흥민(27·토트넘)도 차범근의 뒤를 잇는 특급 해결사지만 태극마크를 달면 도우미로 변신하는 선수다. 손흥민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6경기를 뛰면서 1골·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동갑내기 황의조(27·감바 오사카)가 아시안게임 득점왕(9골)에 오른 것은 손흥민이 골 욕심을 버리고 팀을 위해 헌신한 덕이다. 손흥민이 최근 두 달 남짓한 사이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11골을 쏟아낼 정도로 날카로운 득점감각을 뽐내기에 더욱 놀랍다. AFC도 아시안컵 대회 개막을 앞두고 손흥민의 변신을 대대적으로 소개했을 정도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동과 동남아시아의 팬들도 손흥민이 과연 아시안컵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그가 최고의 별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미드필더 강국 일본의 하라구치 겐키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1992·2000·2004·2011년 대회)인 일본도 자랑할 만한 도우미가 있다. 하라구치 겐키(28·하노버)는 독일 분데스리가를 누비는 해외파로 일본의 측면공격을 도맡고 있다. 하라구치는 최근 축구 트렌드와는 달리 직선 돌파가 일품인 선수다. 그의 발끝에서 나오는 크로스를 받아 터지는 오사코 유야(베르더 브레멘)의 슛이 일본의 주요 득점 공식이다. 일본은 하라구치가 미우라 가즈요시(1992)와 나나미 히로시(2000), 나카무라 슌스케(2004), 혼다 게이스케(2011)에 이어 자국의 5번째 아시안컵 MVP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격수 미우라를 빼면 이들 모두 미드필더다.

하라구치 겐키(왼쪽), 마시모 루옹고(오른쪽) / 구단 공식홈페이지

하라구치 겐키(왼쪽), 마시모 루옹고(오른쪽) / 구단 공식홈페이지

‘디펜딩 챔피언’ 호주는 팀 케이힐이 은퇴한 가운데 에런 무이(허더즈필드)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해 예년보다 전력이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드필더 마시모 루옹고(27·퀸즈파크 레인저스)가 건재하다는 점에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루옹고는 체구(1m76)는 작지만 영리한 드리블 돌파와 감각적인 패스가 강점이다. 4년 전 호주 아시안컵에선 깜짝 활약으로 우승을 이끌면서 MVP에 오르기도 했다. 루옹고는 평소 골보다는 어시스트에 능하지만 한국만 만나면 득점 본능을 일깨우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터뜨렸고, 지난해 11월 한국과 평가전에선 1-1 무승부를 이끄는 동점골을 뽑아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전노장은 어린 선수들이 갖고 있지 못한 노련미로 자신의 가치를 빛낸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란의 미드필더 아쉬칸 데자가(33·트락토르 사지)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번 대회에서 이란의 네 번째 우승을 이끌겠다고 다짐한다. 데자가는 어린 나이에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해 독일식 축구를 배운 선수다. 그는 21살까지 독일 각급 대표로 활약했으나 2012년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부름을 받아 이란 국가대표로 데뷔해 두 차례 월드컵에 참가했다. 데자가는 골키퍼와 수비 사이에 떨어뜨리는 킬 패스가 무기로, 그의 활약상에 따라 이란의 성적도 좌우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데자가는 “이란이 한국이나 일본, 호주를 꺾고 우승해 이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는 이라크의 알리 아드난(26·아틀란타)이 우승후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MVP에 도전하는 도우미다. 아드난은 왼발잡이 왼쪽 풀백으로 이라크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 진출했다. 투지가 넘치는 오버래핑과 날카로운 프리킥이 장기다. 4년 전 호주 아시안컵에서 이라크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아드난은 이번 대회가 환경이 익숙한 중동에서 열린다는 이유를 들어 2007년 이후 12년 만의 우승을 자신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열린 역대 8번의 아시안컵 중 6차례나 중동이 정상에 올랐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의 응우옌 꽝하이(22·하노이)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꽝하이는 지난해 베트남 V리그에서 9골·9어시스트를 기록해 MVP 격인 골든볼을 수상한 선수다. 박항서 감독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는 지난해 12월 동남아시아 최고를 가리는 스즈키컵에서 3골을 넣으며 베트남이 1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왼발잡이로 킥이 뛰어난 꽝하이는 역습을 강조하는 베트남의 전술에서 팀 동료를 살려주는 찬스 메이킹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민국 스포츠경향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