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황금돼지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새롭게 바라는 소망들을 기원하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묵은 것을 치워야 한다. 그래서 새해맞이 대청소를 한다. 복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려고 말이다. 게임계가 혁신하기 위해 자리잡고 있는 묵은 것들로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많다. 그 중 가장 오랫동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 ‘셧다운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흘러갔다.

사진/연합뉴스
밤 12시만 되면 게임이 차단된다 하여 일명 ‘신데렐라법’이라고 불리는 ‘셧다운제도’. 그 근거 법령을 살펴보면 지금이 2019년인지, 유관순 열사가 독립만세를 외치던 1919년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청소년보호법 제1조에는 셧다운제 취지가 나온다.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그 아래 제3장 제26조에 아주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대목이다. 게임중독을 막겠다는 취지다. 게임중독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중독이 문제라면 게임 자체에 접근을 차단해야지 왜 6시간만 셧다운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머지 18시간 동안 하는 것은 괜찮다는 의미인가? 이에 대해 ‘청소년 수면권’이라는 군색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진정 애들을 재울 요량이면 스마트폰이나 청소년 인터넷 계정을 셧다운시켜 잠자는 것 말고 할 것이 없게 만들지, 뭐 이렇게 엉성하게 만들었을까 싶다. 혹시 삼성, 구글, 애플을 ‘셧다운’하자니 감당이 안될 듯하고, 애먼 국내 온라인 게임사와 게이머들만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설마 청소년 보호에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정부 부처가 그런 ‘쫄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게임산업이 성장잠재력이 큰 문화콘텐츠 산업이라고 부추기면서, 그것을 열심히 사용하는 청소년들을 막는 정부 부처의 이중적인 행태다. 사람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요즘 이슈가 되는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진단받기 딱 좋은 현상이다. 만일 부모의 이런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자녀에게 장기간 노출되면 아이들도 혼란스러워진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전한 인격체’를 위한 셧다운제도가 목적과 반대로 의존적이고 혼란스러운 인격의 청소년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초의 차가운 날씨 탓이리라.
게임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셧다운제’를 해야 하는 정도의 정부와 청소년을 둔 나라가 초연결 사회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한다는 말은 지독하게도 슬픈 코미디로 들린다. 뛰는 것도 위험하다고 못하게 막으면서 올림픽 육상에서 금메달을 바라는 그런 상황과 다를 바 없으리라.
올 한 해 셧다운제 같은 부조리한 제도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창의성의 기초가 되는 ‘관대함’이 우리 사회에 자리하기를 기해년 정초에 나는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이런 소망이 너무 거창한 소망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