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보스트리치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 겨울 ‘겨울 나그네’를 탐독해야 할 이유

괴테·횔덜린·바이런 등이 곳곳에서 출몰하는 이 24곡의 가사를 일일이 해제하고, 그 노랫말과 멜로디에 담긴 독일 문화사의 유구한 문맥을 짚어내면서, 결국 보스트리치는 진실로 마음을 뒤흔들어버리는 <겨울 나그네>를 그려낸다.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이안 보스트리치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어렸을 때 최인호·박범신·한수산 등의 ‘연재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송곳 같은 질문으로 이 작가들의 작품을 해부하면 이른바 ‘문학성’이라는 측량법에 조금은 미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당대의 일상과 문화와 정서를 살펴본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작가들의 연재소설만큼이나 그 당시의 풍속을 일별해주는 작품도 드물다. 도시 풍속화의 대가인 최인호, 탈향 시대의 청춘들의 허기를 그린 박범신, 그리고 감성적인 문체로 안갯속 도시 풍속을 그린 한수산은 도시 문화사의 관점에서 엄밀히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한수산의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각별하게 기억한다. 그의 작품 속 남자 주인공 이름이 대부분 ‘윤수’이기 때문이다. 윤수, 그러니까 내 이름과 똑같은 작품 속의 윤수는 그 무렵의 ‘클리셰’를 조금 활용하여 표현한다면, 긴 머리카락에 쓸쓸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남자이며 가난하지만 궁상맞지 않고 그 어느 부잣집 도련님들보다 교양 수준이 높고 풍부하다. 실제로 그러했다. 소설 <아프리카여 안녕>에서 윤수는 서양화를 전공한 대학 2학년생이다. 몸이 아파서 휴학을 한 고등학교 3학년생 영주가 시골에 내려왔다가 윤수 오빠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는데….

소설 <거리의 악사>가 24곡으로 이뤄진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의 맨 마지막 곡의 제목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한수산의 소설에 배경음악을 깐다면 여지없이 슈베르트다. 한수산은 지난 2000년 2월, 서울 도심에서 열린 ‘동아국제마라톤’을 앞두고 이렇게 쓰기도 했다. “광화문을 출발하여 15.3m인 잠실까지는 표고차가 15m를 넘지 않는 마라톤 최적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높낮이는 평탄하고, 길목마다 아기자기하다. 슈베르트의 소나타 ‘노랫말 없는 노래(song without word)’의 어느 한 곡처럼.”

그러나 이제 슈베르트를 그 옛날의 우수어린 곡으로만 듣기는 어렵다. 그 시절의 정보 부족과 교양문화의 편식과 달리 오늘날에는 서양문화사에 대한 정보가 적지 않게 축적되어 있고 19세기의 사회 상황을 판별하는 시선도 복합적으로 누적되었다. 이를테면 슈베르트는 프랑스 혁명과 반혁명, 나폴레옹주의와 구체제의 등장, 발달하는 경제 상황에 따른 속물 교양주의와 시민 공화주의의 이중 나선 등으로 살펴봐야 한다. 슈베르트의 시대, 즉 ‘비더마이어’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집합적 감수성은 그저 ‘우수에 젖은’ 시대라기보다는 메테르니히 경찰국가 체제 아래 ‘강요된 평화’의 단면이었다.

이런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철학과 역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테너 이안 보스트리치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이 겨울에 반드시 탐독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이 걸작은 보스트리치의 책에 의하여 깊은 겨울의 쓸쓸한 노래 모음집에서 한 시대의 사상적·문화적·음악적 풍경을 폭넓게 이해하는 작품이 된다. 괴테·횔덜린·바이런 등이 곳곳에서 출몰하는 이 24곡의 가사를 일일이 해제하고, 그 노랫말과 멜로디에 담긴 독일 문화사의 유구한 문맥을 짚어내면서, 결국 보스트리치는 진실로 마음을 뒤흔들어버리는 <겨울 나그네>를 그려낸다. 이 책은 아니 거꾸로 말하여,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보스트리치의 책을 한 쪽씩 넘겨가며 들을 때 비로소 제자리와 의미를 갖게 된다. 보스트리치의 서문, 즉 ‘시작하며’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클래식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입문자에게 ‘겨울 나그네’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레퍼토리다. 소박하지만 마음을 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린다. 마지막 노래 ‘거리의 악사’가 끝나고 나면 손에 잡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바흐의 수난곡만이 불러올 수 있는 묵직한 침묵이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