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안겨준 현상은 아주 뜻밖의 곳에서 출발했다. 암스테르담의 남자 화장실이 그 장소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더니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어드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식의 표어보다 파리 모양의 스티커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데 훨씬 강력하고 효과적이었다. 이것에 주목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탈러(Thaler)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개념으로 넛지(Nudge)를 주장하게 된다. 마침내 파리 모양 스티커는 그에게 2017년 노벨상을 안겨주게 된다.
![[IT 칼럼]게임은 4차 산업혁명의 ‘넛지’이다](https://img.khan.co.kr/newsmaker/1306/1306_55.jpg)
50만원짜리 PC와 150만원짜리 PC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용도에 있다. 대체로 비싼 컴퓨터는 그 용도가 업무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용이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용의 끝판왕은 게임이다. 당대 최신의 게임을 문제없이 즐길 수 있는 컴퓨터는 가장 좋은 성능과 비싼 컴퓨터라고 봐도 무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하여 즐기는 온라인 게임은 초고속 인터넷 망을 확산시켰다. 또한 기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저장장치와 빠른 처리속도가 절실하게 느껴지도록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고 성능의 그래픽카드가 컴퓨터를 구입하는 데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되도록 만든 데에는 최신 게임들이 있다.
파리 모양 스티커에 열심히 조준하다보니 화장실이 깨끗해진 것처럼, 최신의 게임을 즐기다보니 거금이 필요한 첨단의 기술과 장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바로 게임은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꾼 넛지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엑스박스의 빌 게이츠, 아타리 근무경험이 있는 스티브 잡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는 게임개발자 출신이었고, 슈퍼셀을 사들였던 손정의와 아시안게임 e스포츠 정식종목화를 이끌어낸 마윈까지 동서를 막론하고 혁신가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게임과 인연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포화된 스마트폰 시장에 혁신의 전쟁이 얼마 전부터 가열되고 있는 듯하다. 신제품 스마트폰을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소비자에게 어필하려면 게임이라는 넛지의 활용 없이는 어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카메라의 개수와 성능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이런 카메라들을 활용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그 카메라를 돋보이게 만드는 지름길일 것이다. 폴더블 폰도 마찬가지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화면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그 게임을 광고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선뜻 열게 만드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비단 스마트폰뿐 아니다. 일을 대신해주는 AI나 로봇은 그리 매력적이지는 못하다. 마치 업무용 프로그램에 애착을 느끼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정말 4차 산업혁명을 일상 속에 뿌리내리려면 게임이라는 넛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AI나 로봇이 개발된다면 훨씬 더 친숙하게 우리 생활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런 기술은 모름지기 최첨단 업무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리라. 적어도 게임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진화에서 보여주었던 역사가 이어진다면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