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잘난 맛에 산다’란 속담이 있다. 심리학적 용어로 바꾸자면 ‘자존감은 삶에 활력을 준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자존감 수업’, ‘미움받을 용기’ 같은 베스트셀러와 함께 자존감은 심리학 용어에서 상식 용어로 변했다. 심리학으로 밥벌이를 하는 나에게 자존감의 열풍은 일면 반갑기도 하지만 일면 서글픈 생각도 들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존감 열풍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회의’가 얼마나 강하고 광범위하게 퍼졌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자존감 열풍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헬조선’의 메아리인 거다.
![[IT 칼럼]게임에서 얻는 ‘사는 맛’ 자존감 높여준다](https://img.khan.co.kr/newsmaker/1302/1302_55.jpg)
불과 50년 전만 해도 자존감은 심리학이나 교육학 논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학술용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은 모르고 살아도 아무 지장 없이 잘만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5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동화·기계화·정보화를 거쳐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기술혁신이 눈부시게 일어난 시기이다. 기술발전은 사람들에게 살맛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회의감만 증폭시켰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그랬다. 기계화·정보화는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가치란 것은 어려운 일, 힘든 일을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런 경험은 보람이나 존경심과 같은 사회적 감정을 이끌어 낸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은 어려운 일, 힘든 일들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와 함께 보람, 존경, 만족과 같은 귀한 감정도 사라졌다. 문득 생각해보니 ‘멘붕’이란 유행어는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허탈감을 표현하는 신조어인 듯싶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살기 좋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반면 사람은 더운 곳, 추운 곳,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전세계 어디서나 잘만 적응해서 산다.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허탈감과 낭패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바로 게임을 통해서다. 게임 속에서는 엄청나게 어려운 퀘스트와 몬스터들이 득실거린다. 또 금방 달성하기 어려운 인내와 수련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간혹 배신과 배반에 치를 떨기도 하는 곳이 그곳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험난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다. 고생의 대가로 얻게 되는 유능감, 보람, 존중감을 느낀다. 기술이 앗아간 ‘사는 맛’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게임에 대한 우려들이 나왔다고 한다. 쓸데없는 것에 과도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그 ‘쓸데’라는 것은 누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밥 이상의 것이 필요 없고, 졸린 사람에게는 안락한 베개보다 유용한 것은 없다. 충분히 먹고, 잠을 잔 사람은 밥과 베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요즘 청소년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게임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존감에 고픈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리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한다면 게임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경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게임보다 더 큰 보람과 존중을 얻을 수 있는 학교와 사회를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