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시장도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늘 성장해 왔던 스마트폰 시장은 최근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삼성과 애플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발표됐다.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마음 놓고 높아지는 가격이었다. 아이폰의 경우 미국 가계 평균소득으로 구매 가능한 개수가 10년 만에 절반이 되어 버렸다. 일반인의 상식적 금전감각으로는 사서는 안 되는 가격대로 이미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삼성도 이에 질세라 고가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동시에 전세계적으로는 염가판 스마트폰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및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마지막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 기업들의 분발 덕이다. 구글 순정 안드로이드 원이나 스냅드래곤 600시리즈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표준 부품들의 성능이 전혀 나쁘지 않다.
서양 기업이 소프트웨어와 핵심 칩을 모듈화하여 개방하고 아시아 기업이 염가형 제품을 양산하는 구조가 재현되고 있다. 이는 PC 시대에 모듈화의 수혜를 입은 대만 업계 위주로 조립 PC의 저가 전쟁이 시작되었던 구도를 방불케 한다.
이는 개발도상국에도 PC 대중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 가격경쟁은 휘말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다. PC 시절에도 그 소모전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조용히 문을 닫아야 했던 여러 기업이 떠오른다. 시장은 포화하였는데 저가격을 차별화 요소로 삼는 자충수를 두었다.
스마트폰 시장도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늘 성장해 왔던 스마트폰 시장은 최근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앞으로 폰을 팔아야 할 상대는 스마트폰 한두 번쯤 다 사본 사람들이다. 이미 잘 쓰고 있는 폰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동통신업계는 이용자의 갱신주기를 2년으로 설정해 왔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빨라 금방 진부해지기에 소비자들도 소모품이라고 생각해 왔다. 약정 할부의 착시로 흔쾌히 2년마다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모두 쓸 만한 폰을 손에 쥔 지금, 가격의 문턱을 낮춰 이뤄졌던 그간의 양적 성장이 먹혀들 리 없다. 혁신 속도가 늦어진 현재 상황에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진을 높이는 일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사치재, 더 나아가서는 지위재가 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0만원, 20만원이면 살 법한 가방을 왜 100만∼200만원이나 주고 사는지 의아해지는 럭셔리의 세계. 폰에서도 펼치고 싶다. 그렇지만 역시 쉽지 않다. 사치재와는 규모가 달라 저변도 함께 넓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나 가구와 같은 고급 내구성 소비재로 포지셔닝하는 법이 있다.
얼마 전 업그레이드된 iOS 12에서는 처음으로 5년 전 폰까지 지원 대상을 넓혔다. 어차피 10년은 탈 차, 약간 무리를 해서 좋은 차를 사자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처럼, 5년 이상 쓸 폰이라면 무리해서라도 좋은 폰을 사자는 심리를 가동시키려는 것이다.
iOS 11의 개악으로 기변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폰5S도 다시 빨라졌다. 의도적으로 진부화시키던 때와는 달리 아이폰은 한 번 사면 5년 이상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애쓴다. 그래야 소비자 스스로 우발적 과소비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품에 큰마음 먹고 투신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여겨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똑같은 전략을 취한 삼성이 주가와 점유율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이고, 그들은 PC 업계의 잔인한 소모전을 기억하므로 초조할 것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