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민주주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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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울민주주의위원회

서울시가 최근 ‘서울특별시 시민민주주의 기본조례’를 입법예고하고 공청회를 가졌다. 이 조례안은 시민민주주의 가치 실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시민민주주의 정책을 개발하고 시민 참여를 통한 시민 의사의 반영과 공론화를 도모하는 한편, 시민사회 성장을 위한 교육·연구활동 등을 수행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전례가 없어 낯설기만 한 이 합의제 행정기관은 지자체의 사무 중 ‘고도의 독립성’이 요구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지방자치법 제116조와 동법 시행령 제79조에 따라 설치하는 거버넌스 기구다.

서울시를 비롯해 각 지자체는 수백 개에 달하는 각종 자문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시정에 시민사회의 전문성을 반영하여 협치를 도모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실상을 보면 행정청의 필요에 따라 시민사회의 자원을 ‘적당히 쓰고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각종 자문위원회는 거버넌스를 가장한 알리바이 기구, 기껏해야 행정청의 하청용역업체 정도의 위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벌어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문의견이 정책 집행에 실제 반영되게 하는 이행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니 위원회의 자문에도 불구하고 ‘너는 떠들어라, 나는 간다’는 식의 관료적 일방주의가 협치의 가면을 쓴 채 버젓이 벌어지기도 한다. 8년여 전 무너져가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박차고 나온 이후 나는 전국을 다니며 지자체의 인권행정을 위해 나름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 왔다. 그 요체는 인권행정은 헌법의 명령이므로 지자체 사무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며 그런 만큼 인권기구는 독립적이고 실효적으로 설치,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지자체도 인권기구의 독립성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거버넌스 기구의 실효적 활동을 원치 않았다. 그저 시끄럽게 굴지나 않았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시가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설치하면 사실상 전국 최초로 새로운 실효적 협치의 틀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여타 자문기구와 달리 자체 사무국을 갖춰 이행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른 지자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참에 민주주의의 상상력을 더 넓고 깊게 펼쳐보자. 예컨대 서울민주주의위원회의 위원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하여 시장이 위촉하되, 그 위상을 시장 위에 두도록 해서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구호를 실제화시키면 어떨까. 도시개발이나 복지정책과 같은 주요 시정에 대한 시민 참여를 제도화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서울시 인권과 민주주의 조례’로 발전시켜 기존의 서울시인권위원회, 시민인권보호관제도와 일원화시키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서울시의 인권, 민주, 자치, 분권, 참여, 협치를 통합적으로 구현할 거버넌스 기구의 마중물로 이 위원회가 튼실히 자리잡길 바란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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