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무대 오른 <생쥐와 인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생쥐와 인간>의 원제는 <Of Mice and Men>으로, 굳이 직역하자면 ‘생쥐와 인간의’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작가 스타인벡이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 <생쥐에게>의 한 구절 ‘The best laid schemes of mice and men go often awry’에서 따온 문장이다. 우리말로는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정교하게 계획을 세워도 그 계획은 자주 빗나가기 일쑤다’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생쥐’와 ‘인간’으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두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들이 꿈꾸는 계획과 그 결과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빅타임프로덕션

빅타임프로덕션

실제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작지만 절실한 꿈을 가지고 있다. 조지는 작은 농장을 사서 레니와 함께 운영하는 꿈을 가지고 있고, 레니는 귀여운 토끼를 맡아 기르는 것이 꿈이다. 늙고 외로운 캔디 영감은 조지와 레니의 농장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의탁하는 것이 꿈이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는 컬리 부인은 멀리 떠나서 자유롭게 사는 꿈을 꾼다. 이들은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지만, 결국 이들의 꿈은 단 한 가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번스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스타인벡은 1930년대 미국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강렬한 사회 비판과 휴머니즘이 특징이다. 특히 <승산 없는 싸움> <생쥐와 인간>

<분노의 포도>로 이어지는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는 대공황 시기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사람들의 좌절을 현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를 강렬한 사회의식을 지닌 작가로 자리매김시켰다. 일하던 중 장애를 입고도 먹고 살기 위해 농장에 남아 잡일을 하는 캔디 영감의 모습이나 고된 하루 일과를 끝낸 뒤 오로지 술과 카드놀이만으로 고달픈 삶을 달래야 하는 농장 인부들의 모습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과 그 속에서 서서히 삶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스타인벡은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단순히 사회 구조적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태생적인 숙명과도 연관시키고 있다. 레니는 생쥐와 강아지, 토끼 등 작고 보드라운 동물을 키우고 싶어하지만, 태생적으로 힘이 센 탓에 늘 소중한 것들을 죽이고 만다. 조지는 늘 “레니만 없었다면” 하고 자신의 삶을 한탄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이 레니를 버리지 못할 것임을 안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누군가를 돌보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숙명적인 외로움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욕망이지만, 인간은 또한 바로 그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소리’가 주는 감각이 도드라진다. 곡식 빻는 소리, 보릿자루 소리, 말발굽 소리 등 농장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다양한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동시에 주요 장면마다 흐르는 강렬한 선율이 작품의 비극성을 감각적으로 강조한다. 10월 14일까지, 대학로 TOM 1관.

<김주연 연극칼럼니스트>

문화내시경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