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설립된 매직리프(Magic Leap)는 제품 출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해 큰 주목을 받은 혼합현실(MR·Mixed Reality) 전문 스타트업이다. 매직리프는 2014년부터 2018년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무려 총 23억 달러(약 2조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투자자들을 살펴보면 구글, 알리바바, 퀄컴,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쟁쟁한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어 눈 먼 돈을 투자받은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매직리프가 판매를 개시한, 메직리프 원 / 매직리프
매직리프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 전에 관련 용어를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상 세계에 대한 완전한 몰입을 제공하는 것을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이라고 하는 반면에, 혼합현실은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를 병합함으로써 실제 환경과 디지털 객체가 화면에 공존하고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걸 의미한다. 사실 혼합현실은 기존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술이다.
매직리프는 가끔 데모 영상을 공개한 것을 제외하고는 제품과 기술에 관한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감춰져 있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데 매직리프가 마침내 지난 8월 8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매직리프 원(Magic Leap One)’이라는 명칭의 제품은 소비자용 버전은 아니고 개발자용 버전으로 미국에서 2295달러(약 257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매직리프 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혼합현실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다. 매직리프 원은 사용자가 안경처럼 착용하는 헤드셋, 사용자의 허리춤에 착용하는 본체 컴퓨터, 그리고 조작을 위한 컨트롤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루민OS(LuminOS)라고 하는 혼합현실 전용 운영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개발자들은 루민OS를 기반으로 혼합현실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된다.
매직리프보다 먼저 혼합현실 제품을 출시하고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MR이라는 브랜드로 협력업체들을 통해 다양한 혼합현실 하드웨어를 출시한 상태다. 게임 유통 서비스인 스팀(Steam)을 살펴보면, 윈도MR을 지원하는 게임들이 다수 출시돼 있다. 하지만 혼합현실에 특화된 콘텐츠는 여전히 양적으로도, 다양성에 있어서도 많이 부족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구글을 등에 업은 매직리프가 본격적으로 혼합현실 시장에 뛰어듦에 따라 앞으로 혼합현실 시장은 좀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직리프 원이나 윈도MR과 같은 혼합현실 기기를 이용하면 사용자는 실제 환경에다 가상 세계를 결합하고, 실제 환경에서 디지털 객체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업무, 라이프 스타일,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는데, 물론 명확한 선결과제들이 존재한다. 시장 선도 플랫폼이 등장해야 하고, 소비자들이 이용하고 싶어 안달이 날 만한 킬러앱(Killer App)도 나와야 하며, 무엇보다 하드웨어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그런 과제들이 해결되는 날, 본격적인 혼합현실의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할 것이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