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에게 중견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은 낯선 인물이다. 음반은 비교적 꾸준히 발표하고 있지만 아이돌이 아니라서 10대·20대들의 레이더에 포착되는 일이 거의 없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작년에 방송된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짤막하게 얼굴을 비친 것이 네댓 해 만에 처음 이뤄진 브라운관 나들이였다.
중년 세대는 그녀를 잘 안다. 특히 주류 가요의 엇비슷함에 권태감을 느껴서 조금 다른 모습을 갈구하는 진취적인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팝, 서구풍 발라드, 재즈 퓨전, 포크 등을 두루 오가는 그녀의 음악은 매번 세련된 단아함을 나타냈다. 과하지 않은 고급스러움 덕에 계속해서 지지자를 늘려 갔다.
늘 새로움을 모색하는 습성도 매력이었다. 그녀는 포크 가수로 인식되는 편이지만 1997년 출시돼 지금까지도 많이 애청되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실린 5집에서는 모던 록을 주메뉴로 소화했고, 2002년에 낸 6집에서는 전자음악의 성분을 곳곳에 배치해 변신을 꾀했다. 유행에 민감한 주류에 기거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쇄신의 담금질을 꾸준히 해 왔다.
2015년부터 선보인 싱글 열 편에다 두 편의 신곡을 추가해 꾸린 여덟 번째 정규 음반 <수니 에이트: 소길화>(soony eight: 소길花)에서도 변화가 발견된다. 6집에 이어 2013년 발표한 7집에서도 전자음악 성격이 어느 정도 배어 있었으나 이번 앨범은 그쪽 장르를 향한 접근이 전보다 더 적극적이다. 전자음을 뼈와 살로 택했지만 요즘 유행하는 경쾌한 일렉트로닉 댄스음악과는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마치 바람이 큰 파이프를 타고 투하되는 듯한 ‘아침을 맞으러’, 일그러진 신시사이저가 스산함을 자아내는 ‘그림’, 느릿하게 진행되는 드럼 프로그래밍이 공허함을 부각하는 ‘아름다운 이름’ 등 다수가 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만돌린과 관악기가 놀이공원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랑, 아무것도 아닌 얘기’와 후반부 스캣이 아기자기함을 배가하는 ‘그림자 춤’처럼 사운드 톤이 다소 환한 노래도 있으나 이들 역시 아주 들떠 있는 편은 아니다. 여기에 특유의 가녀리면서도 허스키한 음성이 앨범의 온도를 더 낮추는 기제로 작용한다.
쌀쌀함은 곡으로만 전달된다. 생전에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다가 먼저 떠나 보낸 동료 조동진과 그의 아내를 떠올리고(‘그림’, ‘낡은 앞치마’), 추억이 깃들어 있거나 위안을 주는 장소와 순간을 되새기는(‘저녁 바다’, ‘그런 날에는’, ‘집’, ‘아름다운 이름’) 가사로 노래들은 인간미와 목가적 정취를 한껏 내뿜는다. 이처럼 앨범은 온기도 드리운다.
그야말로 신기(新奇)하다. 정서가 상반되는 반주와 노랫말이 어우러지는 점은 기묘함을 연출한다. 또 한 번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고 다른 스타일을 찾은 모습은 무척 참신하게 다가온다. 한적함,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 소소하지만 기쁨을 안긴 일상을 포괄하는 소리와 가사는 은은한 푸근함으로 수렴된다. 3년 만에 한 덩어리가 된 <수니 에이트: 소길화>는 가을을 바라보는 지금 같은 때에 더없이 듣기 좋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