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되는 창작 뮤지컬이 한 달여 만에 10만 관객을 넘었다. 영화로 치면 삽시간에 수백만 관객을 돌파한 것과 같은 흥행이다. 뮤지컬이 영화보다 오래 공연되며 대중들을 만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가 모아지지 않을 수 없다. <웃는 남자>가 쓰고 있는 신기록이다.

EMK 뮤지컬 컴퍼니
뮤지컬의 원작은 빅토르 위고가 1869년 발표한 소설이다. 영화광이라면 2012년 제라르 드 파르듀가 출연했던 프랑스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의 탄생’이라는 조금은 엉뚱한 홍보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일부러 얼굴을 칼로 찢어 항상 웃는 모습을 만들었다는 극중 캐릭터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는 의미다. 사실 이야기의 배경이 된 17세기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노예들의 얼굴을 망측하게 만들어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그 웃음에 담긴 비틀린 사회에 대한 조롱과 심지어 그런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민초들의 페이소스는 그 자체로 감동을 자아낸다.
뮤지컬은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해외 대작 뮤지컬의 번안 무대가 아닌 오리지널 대한민국산 뮤지컬이 이 같은 비주얼적 완성도를 갖추었다는 점은 정말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무대 전환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수려함과 세련된 장면 전환에 절로 탄성이 흐른다. 무대 디자이너인 오필영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냈다. 이미 전작인 창작 뮤지컬 <마타 하리>에서 비행기가 하늘을 날거나 영상 디졸브(한 화면이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화면이 나타나는 장면 전환) 같은 무대적 상상력을 실현해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층 세련된 무대적 상상력을 구체화했다. 주인공인 그윈플렌의 아픔을 상징하는 붉은 웃음은 단지 배우의 얼굴뿐 아니라 무대장치들에 담겨 시종일관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노래로, 이미지로, 혹은 무대 세트로 등장할 때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시대의 비극이라는 극적인 아이러니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리 낯설지 않은 주제라는 점은 뮤지컬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또 다른 매력이다.
크리에이티브도 화려하다. <지킬 앤 하이드> <몬테 크리스토>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모차르트> <레베카>의 작사가 잭 머피, 그리고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팀을 이뤘다. 여기에 김문정 음악감독, 구윤영 조명 디자이너,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등 한국 뮤지컬 장인들의 손길이 더해졌다.
무대를 보고 원작소설을 다시 찾아 읽는 사람도 많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각광을 받는다는 ‘역주행의 신화’가 K팝만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 빠르게 성장해온 한국 뮤지컬이 글로벌 시장에 새롭게 던지는 도전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더 반갑다. 얼마나 큰 파괴력을 드러낼 수 있을까. 꽤나 흥미진진한 2018년 여름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