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왜 늘 기업에 양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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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에어컨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마음껏 에어컨을 틀 수는 없다. 누진제 전기요금이 2016년 이래 조금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문을 열어 놓고 에어컨을 돌리는 상점들 같은 호기를 부릴 재주는 없다. 하지만 한겨울의 가스와 마찬가지로 이런 혹서기에 전기란 생명선이다. 실제로 폭염 사망자들이란 에어컨이 있었다면 살 수 있었던 이들이다. 대폭 늘어난 폭염 피해자 때문에 폭염도 자연재해에 넣어 관리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그런데 지금 우리의 여름은 적도의 싱가포르보다 덥다. 무더위를 이례적 재해로 넘기기보다 근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망가져 가고 있는 기후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생물의 자세다.

더위는 정신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참고 견디는 일이 미덕처럼 여겨져 왔다. 절전은 그렇게 문화가 되었고, 그렇게 절약된 전력은 산업에 우선적으로 배분되었다.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함께 힘 좀 쓰자며 소비자를 잠잠하게 하는 법은 단순했다. 가격이었다. 그렇게 오일쇼크 때 징벌적 전기요금 누진제는 시작된다. 그리고 한 번 만들어진 제도는 명분을 발전시켜 가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소득재분배라는 명분까지 등장했다. 전기를 적게 쓰는 사람은 가난한 취약계층일 것이고, 많이 쓰는 이들은 절약정신도 없이 버릇없는 부자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3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외벌이 가정이 맞벌이 딩크족보다 부자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은 수출 주도형 제조업 경제로 커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전기와 같은 자원도 최우선적으로 밀어줬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국민을 돌봐주기를 원했던 것이고, 그것이 국익이라니 감히 이견이 있기 힘들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면에서 목격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과 소비자는 소외되기 쉽다. 언제까지나 기업을 소비자의 자원으로 만든 요람 위에서 키울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과보호는 기업을 위하는 길도 아니다. 가뭄 끝의 단비에 나무가 크듯, 기업은 결핍에서 길을 찾기 때문이다. 가정의 개인은 전기요금이 비싸면 에어컨을 끄고 더위에 지치는 수밖에 없지만, 기업은 원가인상이라는 제약조건이 압박해 올수록 이에 혁신으로 응전할 수 있는 체력과 동기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냉각에 드는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바다에 빠뜨리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나틱 프로젝트라는 이 해저 데이터센터는 외부 전력 공급 없이 풍력과 파력(波力)이라는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기업의 시도는 사회를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한편 동사는 데이터센터를 이미 한국에 유치했는데, 당시 지사장이 한국 진출 비결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직접 꼽기도 했다. 이 또한 국가 경쟁력일 수 있으나, 과도한 기업용 전기요금 혜택은 보호무역주의로 인지되어 무역 보복을 불러올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족한 질문이 있다. 우리 사회는 늘 ‘그것은 국가와 산업에게 좋은 것인가’만 물어왔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소비자와 시민에게 좋은 것인가’를 물을 차례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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